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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볕 속의 마음의 평정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연일 계속되는 무더위에 대지가 온통 용광로처럼 이글거리고 있다.
낮 최고 기온이 1주일 넘어 전국적으로 30도 이상을 치닫고 불쾌지수까지 80을 웃돌고 있는 가운데 대구를 비롯한 일부지방은 최고 38도의 폭염이 맹위를 떨쳐 수년래 처음 보는 무더위를 기록했다.
더위에 겹쳐 영·호남 내륙 지방은 가뭄이 2개월째 계속돼 논바닥이 갈라지고 저수지조차 바닥이 드러났다.
특히 경북지방의 한발은 지난 51년도이래 가장 심해 올해 논 식부 면적 19만6천2백㏊ 가운데 1만9백33㏊가 용수 고갈로 가뭄 피해를 보고, 비안도를 비롯한 서해안 19개 섬 지방도 99·8㏊의 논 가운데 20㏊가 완전히 말라버렸고 2백45㏊의 밭에 심은 고구마·콩·께·옥수수 등 작물도 고사 직전에 놓여있다고 한다.
타들어 가는 벼 포기를 보며 애를 태우다 못한 농민들은 곳곳에서 기우제를 지내고 부녀자들이 알몸으로 건목을 하는가하면 전남 어느 마을에서는 주민들이 비가 오게 한다며 남의 묘를 파헤쳐 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무더위와 가뭄에 따른 소동은 도시에서도 마찬가지로 심각하다.
불볕이 계속되자 상수도 사용량도 급증, 서울의 경우 평상시보다 30%나 더 많은 물을 소비함으로써 보광·구의·뚝섬·노량진·영등포 등 5개 수원지와 보조 수원지를 철야 가동하는데도 매일 8만여t의 식수가 모자란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변두리 고지대 시민들은 더위와 갈증의 2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며칠전 영등포구 가리봉동에서는 식수난으로 주부들끼리 물싸움을 벌여 경찰에 입건되는 사례까지 있었다.
뿐만 아니라 한강 상류 지방에 비가 오지 않아 「댐」의 수위가 최저 수위에 이르러 한강계 수력 발전의 최대 출력이 45만kw로 떨어졌다. 그러나 전기 사용량은 더욱 늘어 지난 20일 하오 「피크·타임」에는 우리 나라 발전 사상 최고인 4백1만6천kw를 기록, 공급 능력 4백3만3천kw에 아슬아슬하게 육박하는 등 긴박한 사태를 빚기도 했다.
더위와 가뭄은 이렇듯 생활 환경 구석구석에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 앞으로도 이 같은 더위와 가뭄은 10여일이나 더 계속될 전망이라니 일상 생활에 미치는 영향의 진폭은 더욱 클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당연히 생각해야할 것은 이렇듯 무덥고 짜증스런 여름은 신심의 「리듬」마저 흐트러 놓기 쉽다는 것이다.
우선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수인성 전염병을 비롯한 각종 질병과 불측의 사고가 앞으로 더욱 빈발할 것을 각오하고 모두가 마음의 평정을 잃지 말아야 하겠다는 것이다.
교양 있는 시민이라면 먼저 더위와 여름의 재앙이 아무리 심하다 해도 그것이 무한정 계속될 수 없다는 데에 안심을 구해야 한다.
그러므로 고통을 참지 못한다거나 신경 과민이 된 나머지 짜증을 내거나 화를 터뜨려서는 안 될 줄 안다. 오히려 자연의 순리와 질서를 배워 무더위와 어려움을 인내로 극복하고, 건전한 시민 정신으로 남에게 불쾌감을 주는 일이 없도록 자제력을 가져야 할 것이다.
더우기 우리 사회 일각에서는 수해로부터의 복구가 아직도 끝나지 않았고, 가뭄으로 애태우고 있는 농민들의 고통을 생각할 때 국민 모두가 사치와 허영을 버리고 분수를 지켜야겠다. 검소한 생활 태도를 가져 물 한방울 전기 한 등을 절약함으로써 도리어 마음의 희열을 맛볼 수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렇게 함으로써 무덥고 긴 여름을 후회 없이 보내고 보람에 찬 가을을 맞이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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