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워킹맘 칼럼

내가 연구하는 '엄마 사장'이 되려는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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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김회룡
김회룡 기자 중앙일보 차장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김춘지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대기과학전공 박사과정 수료

밤 10시. 평균적으로 두 아이 엄마가 자신의 일을 시작할 수 있는 시간이다. 만약 나에게 일이 없었다면 이 늦은 밤 시간은 아이들과 함께 오늘의 피로를 풀 수 있는 달콤한 시간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해야만 하는 일이 있기에 아이들과 함께 잠들 수가 없다.

 난 결혼 후 3년 만에 아이를 어렵게 가지게 돼 다니던 직장을 포기하고 전업주부의 길로 들어섰다. 아이를 무사히 낳고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니 선배들이 나를 찾기 시작했다. 아이를 두고 어떻게 직장을 나가느냐는 질문에 돌아오는 선배들의 대답은 “네 커리어 유지비라고 생각하고 급여로 양육자를 고용해”라는 것뿐이었다.

 과학기술 전공자로서 연구소의 연구원으로 일하며 출퇴근하기도 어렵지만 제주도로 이전한 연구소를 다니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더욱이 엄마의 손길이 한참 필요한 영아기에 주말 또는 월말 부부가 되어야 하는 연구소 취업은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나도 나의 커리어를 유지하고 싶다. 하지만 사회적 제도가 받쳐주지 않는데 어찌 워킹을 꿈꿀 수 있겠는가. 한편으로는 내가 쌓아온 기후 모의 수행 및 분석 능력을 썩히기엔 아까운 생각이 들기도 했다. 나아가 국가적인 손해라고 느낄 때도 있었다. 그런 생각이 날 때면 취업의 방법을 모색해보다가도 그 고민의 끝은 언제나 현실의 벽에 부딪히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육아와 일을 함께 병행하기 위해 일자리를 나 스스로가 만들기로 결심했다. 고민 끝에 과학기술서비스업으로 1인 창조기업 등록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비록 작은 규모지만 기술정보를 분석, 또는 기후 모델링 시뮬레이션 및 분석 등 연구원으로서 내가 가진 기술을 제공할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만들어 부가가치를 창출하고자 한다. 조달청에 등록된 과제를 직접 신청하거나 연구과제의 참여기관으로 등록해 공동 연구를 수행하는 방법 등이 있다. 아이가 어린이집으로 등원한 시간과 하원한 뒤 잠이 든 밤에 주로 일할 수밖에 없지만 적어도 내가 직접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확보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 수 있다.

 나는 연구하는 엄마 사장으로서 첫발을 내딛고자 한다. 이 방법이 과학기술인 경력단절 여성들에게 해결책 중 하나가 되기를 바란다. 더 나아가 이러한 방식으로 나의 기술을 유지하면서 향후 아이의 성장과 더불어 독립할 수 있을 때 내가 다시 사회에 되돌아갈 수 있는 날을 기대해본다.

김춘지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대기과학전공 박사과정 수료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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