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억대 이상 차가 붐벼도 체증이 없다…미국의 도로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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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누군가는 미국의 인상을 『서있는 미국』이라 했고 또 다른 사람은 『누워있는 미국』이라고 했다. 『서 있다』는 얘기는 「빌딩」의 숲을 얘기한 것이고 『누워 있다』는 말은 넓은 망과 거기에 뻗어있는 「하이웨이」를 보고 한말이다.
어느 말이 정확한 표현인지는 모르되 두 가지 다가 미국의 부를 상징하는 것만은 틀림없다. 쭉 뻗은 고속도노망이 미국의 힘을 과시할 뿐 아니라 그것을 통해 또, 부가 더욱 이룩되고 생기가 넘치는 것이다.

<백년을 내다본 설계>
고속도로망이 가장 잘 돼있는 곳은 넓은 서부의 「켈리포니아」-. 여기선 웬만한 고속도로를 모두 「프리웨이」라고 부른다.
여기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자동차를 몰고 고속도로에 진입하는 것도 「프리」하고 고속도로에서 차선을 바꾸는 것도 「프리」하고 동서남북 어느 방향으로도 갈 수 있게 도로망이 「프리」하게 이어져 나가 있으며, 요금을 내는 곳도 없어 「프리」고 고속도로에서 시내로 빠져 나오는 것도 모두가「프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 대륙 서남쪽에 위치한 「로스엔젤레스」에서 자동차를 몰고 「프리웨이」를 타면 수천 「마일」떨어진 동부「워싱턴」이나 「뉴욕」또는 「시카고」「댈러스」「마이애미」 등 미국 내 어느 도시든지 「브레이크」한번 밟지 않고 도착할 수가 있다.
미국의 고속도로망은 그만큼 「프리」하고 또, 거미줄 같이 전국을 엮어놓았다.
요즘은 항공기의 이용자수도 부쩍 늘어나고 있지만 아직도 미국인들은 몇백「마일」정도는 자기자동차를 몰고 다니는 습성에 젖어있다.
그만큼 생활에 여유가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시골 구석구석에까지 연결돼있는 도로망 덕분이기도 하다.
특히 지역이 넓고 생활이 윤택한 「켈리포니아」주의 「프리웨이」망은 미국 어느 지역보다도 발달돼 있다.
지진지대이기 때문에 지하철을 건설하지 않은 「켈리포니아」주의 경우 특히 「프리웨이」건설에 엄청난 돈을 쏟아 붓고 있다.

<1·8명에 거 1대 꼴>
지금부터 40여년 전에 건설된 도로가 l980연대의 교통량을 예상하고 건설했다는게 「켈리포니아」주 당국자의 실명이었다.
도로건설에 50년 후를 내다보고 설계를 했으니 아직도 이런 도로들은 전혀 보수하거나 뜯어고칠 필요 없이 간선도로 역할을 해내고 있다.
날림공사란 있을 수가 없다.
공사기준도 엄격한데다가 건설비도 엄청나 「마일」 당 건설비가 1백만「달러」(5억원)가 넘는 경우가 허다하다.
주 정부 교통국의 한 관리는 『경우에 따라선 「마일」 당 건설비가 1천만「달러」(50억원)까지 드는 곳이 있다』면서 『고속도로 건설에 관한 한 돈을 아끼면 아낄수록 손해』라고 강조했다.
즉 50년, 1백년 후를 내다보고 튼튼하고 넓은 고속도로를 닦아 놓으면 부실공사가 됐을 경우에 드는 추가 예산-예를 들면 보수비· 확장공사비· 통행차량의 훼손 비·소모 「가솔린」, 사고 등-이 훨씬 더 많아 오히려 큰 손해라는 것이다.
이 같은 거시적이고 장기적인 안목을 지닌 미국의 행정이야말로 오늘날의 미국의 번영을 가져온 원동력중의 하나가 아닐 수 없다.
현재 미국인 전체의 자동차 보유 대수는 약1억2천만대로 인구1.8명에 1대 꼴로 자동차는 완전히 생활필수품이며 미국인들의 발이다.
소련이 4백 만대의 자동차를 보유, 겨우 64명에 1대 꼴이어서 미국과는 비교가 안 된다.
76년도 자동차생산량은 미국이 8백50만대, 소련이 1백25만대 였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1억대가 넘는 미국내의 모든 자동차가 교통순경이 아닌 신호등에만 의존, 질서정연하게 운행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출퇴근시간의 혼잡한 대도시 「다운타운」 몇 군데를 빼놓고는 미국 어디를 가나 네거리에 교통순경이 전혀 지휘하는 광경은 전혀 볼 수가 없다.
1억대 이상의 자동차는 모두가 파란 불·빨간 불·노란 불이 자동적으로 켜지는 신호등에 따라 질서정연하게 운행되고 있다.
교통순경들은 대부분 정기적인 순찰을 하거나 사고 난 자동차의 신고를 받고 현장을 조사하는 역할을 할뿐이다.

<신호등이 경관 대행>
이렇듯 엄청난 수의 자동차가 전혀 흐름이 막히지 않고 소통이 잘되는 이유는 시민 모두가 가지고 있는 질서에의 관념과 잘 발달된 도로망 덕분이다.
미국 고속도로망의 또, 한가지 중요한 특징은 『24시간 살아있는 도로』라는 점이다.
출퇴근 시간엔 말할 것도 없지만 대낮이건 상오2시건 언제 어느 때 고속도로에 올라가도 자동차의 대열은 그치질 않고 있다.
가족과 함께 여행을 떠났다가 돌아오는 사람, 장거리 수송을 맡고 있는 대형「트럭」의 행렬, 새벽 비행기에서 내린 사람, 상오3시에 공장에서 퇴근하는 사람 등으로 미국 고속도로는 언제나 쉬질 않고 있다.
이같이 24시간 살아있는 도로는 그만큼 미국을 살찌게 하고 부를 지탱하는 대동맥이다. 【글=김건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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