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량 건축자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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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불량건축자재의 문제는 어제오늘에 비로소 제기된 것이 아니다.
한때는 들었다 놓기만 해도 부스러지는「시멘트·블록」이 소비자들의 지탄을 받은 일이 있다.
요즘은 여러모로 품질이 조금씩 개선되어가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문제가 완전히 해소된 것은 아닌 것 같다.
오히려「시멘트」·모래 등 기초자재가격의 상승을 틈타 「시멘트·블록」「시멘트」벽돌·기와 등 2차 제품은 불량품이 오히려 판을 치고 값도 터무니없이 올려 받고 있다는 관련업계의 소식이다.
이 같은 사정을 알았음인지, 건설부는 최근 각시·도에 대해 「시멘트」벽돌·「블록」·기와를 생산하는 업자들의 등록을 받으라고 시달하고 등록을 하지 않은 업자에게는 제품 생산을 중단케 하라고 지시했다 한다.
이 지시에는 또 등록업체의 시설기준을 정하여 일정규모 이상의 대지와 기자재를 갖추도록 할 것도 아울러 규정하고 있다.
이 같은 조치는 물론 업자들이 당국의 규제 없이 멋대로 저질건축자재를 생산·판매하는 것을 막아보자는 것으로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할 책임이 있는 정부로서는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건설부의 이 같은 일견 지극히 당연하고 사소한 듯 한 지시에는 몇가지 간과할 수 없는 문제점이 도사리고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첫째 알려진 바에 의하면 이번 건설부의 지시는 법률의 근거를 결한 행정관서의 임의적인 조치라는 점이다.
새삼스레 「법에 의한 지배」의 원칙을 강조할 필요도 없이 국민에게 의무를 부과하고 자유를 제한하는 행정력의 발동은 법률에 근거를 두어야 한다는 것은 상식에 속한다.
그렇다면 사업자에게 일정기준 이상의 시설을 갖출것과 등록을 요구하고 이에 불응하는 경우 사업활동을 금지하겠다는 지시가 법률의 근거 없이 어떻게 발하여질 수 있겠는가.
이번 지시의 근거로 74년 3부장관의 공동지시를 내세우고 있으나 행정각부장관의 명령이나 지시는 그것이 몇 사람의 공동명의가 되더라도 법률을 가름할 수는 없는 것이다.
둘째 이번 지시는 그 집행을 강제할 법률의 뒷받침이 없기 때문에 실효를 기대하기 어려우며 실효성 없는 행정명령의 남발은 정부의 위신과 공신력만 떨어뜨릴 우려가 있다는 점이다.
건설부는 이미 74년과 75년에도 같은 지시를 내린바 있었음을 기억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렇듯 매년 같은 지시를 되풀이하고 있다는 사실이야말로 그 지시가 별로 효과를 보지 못했음을 입증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세째 우리가 의아하게 생각하는 것은 법률의 제정과 개폐에 별다른 곤란을 느끼지 않는 정부가 어째서 국민생활의 안전에 직결되는 불량건축자재에 대한 합법적인 규제근거를 아직 마련하지 못했느냐 하는데 대한 의문이다.
알려진 바로는 건설부가 이미 수년전에 건축자재관리법이라는 법률안을 만들어 놓고 있으나, 기존 공산품 품질관리법과의 중복 여부가 문제되어 입법이 실현을 못보고 있다는 것이다.
공산품 품질관리법과 건설부가 새로 제정하려는 건축자재관리법이 그 내용에 있어서 어느 정도 중복, 혹은 충돌되는지 모르나 공산품 품질관리법이 특정 건축자재에 대해서 품질검사를 받아야 할 것을 규정하고 있음은 사실이다.
다만 절차규정에서 제조업자나 판매업자의 신청이 있을 때 만 검사한다고 되어있어 건축자재의 품질을 원천적으로 규제하고 검사를 필수요건으로 하겠다는 건설부의 의도에는 미치지 못하는 듯하다.
이렇게 볼 때 건축자재의 품질을 규제하는 문제는 기존법령을 다소 고치거나 새로 입법을 하거나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것은 누구나 짐작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문제가 몇년씩 해결을 보지 못한 채 변칙적 방법으로 규제되어 왔다는 것은 우리행정의 헛점을 드러낸 것으로 관계당국의 맹성이 촉구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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