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서 푸대접받는 화교들의 「한자신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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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동남아의 2천여만 화교들에게 오랫동안 정신적 지주역할을 해오는 한편 이 지역의 언론계에 큰 영향을 끼쳐온 한자신문들이 정세의 변화에 따라 시련을 겪고 있다.
화교국인 「싱가포르」는 예외지만 여타 동남아지역의 20여종의 한자신문은 각국이 가해온 통제에 따라 쇠퇴일로를 걷고 있다.
한자 지에 몰아닥친 시련의 배경에는 동남아지역원주민의 민족적 자각, 내년 인지반도의 적화 및 중공의 대동남아정책, 그리고 각국의 대 중공정책 등이 뒤얽혀있다.
인지공산화전「사이공」시에서 발행되던 12개의 한자지가 격화 후엔 하나만 살아남게 됐다. 그나마 공산당국의 선전과 교육의 도구로 이용될 뿐.
한자 지의 이 같은 쇄퇴는 특히 「성」계 신문왕국의 역점이 대표한다.
남양의 제약 왕이자 신문왕이었던 호문호는 29년「싱가포르」에서 성주일보를 창간했다. 이것을 출발점으로 해서 첫 글자가 「성」자로 시작되는 「성」계 신문왕국이 동남아각국은 물론 중국본토에까지 구축됐다. 한때 영자 지를 포함해서 성계 신문들은 십 수종에 달했지만 지금 남아있는 것은 성주·성빈·성섬·성도일보뿐.
이런 몰락의 배경에는 동남아각국이 2차 대전이후 화교들의 세력신장을 억제하는 조처를 음양으로 취했기 때문. 「말」연이 「싱가포르」에서 발행되는 신문의 직접판매를 금하는 조처를 취하자 성주일보가 「말」연에도 회사를 따로 세워야했던 것이나 성섬보가 「타이」당국에 의해서 「타이」남부의 판매를 금지 당한 것은 화교억제책의 한 예에 불과했다. 성섬 일보는 성태 일보라는 석간지를 같이 발행했지만 「타이」정부의 규제로 폐간했다. 「싱가포르」최대신문 남양상보의 편집국장이 「게릴라」들과 관련을 맺었다는 혐의로 체포되기도 하고 「필리핀」에서는 한자 지에 모택동 등 중공요인의 사진을 싣지 못하게 하는 조처를 취하기도 했다. 【싱가포르=이창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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