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지 말자 대한민국 안전 침몰한 그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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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대한민국의 시계는 2014년 4월 16일 오전 8시48분에 멈췄다. 그날 ‘대한민국호(號)’의 안전도 침몰했다. 476명을 태우고 인천을 출발해 제주로 가던 여객선 세월호는 전남 진도 부근 해역에서 멈췄다. 수학여행 가던 안산 단원고 2학년생 325명도 타고 있었다. 단원고생 최덕하(17)군이 오전 8시52분 신속히 전남소방본부에 119 전화로 신고했다. 그러나 이때부터 소방본부와 해양경찰·해양수산부·해군·안전행정부의 허둥지둥 대처가 8일까지 계속됐다. 총리실·청와대의 대응도 미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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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실에서 대기하라”는 안내방송을 승객들은 철석같이 믿고 따랐다. 하지만 선장과 선원들은 자신들만 살겠다고 배와 승객을 버리고 먼저 탈출했다. 세월호가 완전히 침몰할 때까지 150분간 구조 기회가 있었다. 그러나 우왕좌왕하느라 기회를 놓쳤고, 초대형 참사(사망·실종 304명)로 이어졌다.

 본지가 사고 발생부터 구조까지 단계별로 매뉴얼이 제대로 지켜졌는지 따져봤다. 끝까지 승객을 구하다 숨진 승무원 박지영(22)씨 등 극히 일부를 제외하면 청해진해운과 정부 할 것 없이 하나같이 매뉴얼을 어겼거나, 몰랐거나, 무시했다. 세월호가 차가운 바닷속으로 가라앉으면서 관피아(관료 마피아)를 비롯해 참사를 초래한 오랜 적폐(積弊)의 면면(面面)이 하나둘씩 수면 위로 드러났다.

장세정·민경원·장혁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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