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숙군에 앞장선 대남 강경파가 주도|강재윤<본사 동서 문제연구소 연구위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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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지금 북괴군의 실력자는 오진우다. 6·25때 사단장이던 그가 군부 1인자가 된 과정에서 군부의 성격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는 김일성이 당료 파(이효순 박금철 김도만 등)를 숙청할 때(67년) 공을 세웠고 2년 후에는 김창봉(대장·민족보위 상), 최 광(대장·참모총장), 허봉학(대장·대남공작 총책), 김정태(중장·정찰국장)의 거세에 앞장섰다.
군 수뇌부 숙청엔 두 가지 명목이 걸렸다. 첫째는 전략·전법의 규탄이며 둘째는 대남 공작 실패의 책임.
김창봉 최 광은 군의 현대장비 도입을 내세워 무기의 경량화·쾌속화·경보병 부대 창설 등을 반대했다. 이에 반해 오진우 김철만은「6·25의 교훈을 살려」정규전·비정규전의 배합, 현대전과 혁명전의 배합을 내세웠다. 판정은 오-김에게 돌아가 오는 최 광의 자리였던 참모총장 자리에 오르고 김철만은 제1참모부장이 됐다.
대남 공작 실패의 문책에선 허봉학·김정태가 ①남한에서의 조직사업에 실패하고 ②「대남사업총국」안에서 당명을 어기고 독주하면서 파벌과 지방주의를 조성했다고 규탄 받았다.
이 같은 강경파의 입김은 남-북 회남 전후에까지 끼쳐 75년 8월에는 김영주 계열인 김중린·유장식·박수동·오태봉 등을 대남 사업 실패의 책임을 지워 거세했다.
북괴군부의 수뇌 급으론 8명을 꼽을 수 있다. 이중 김 일(65)과 최 현(75)은 고령으로 사실상 후퇴했다.
오진우 다음으로 주목할 인물은 이용무와 김철만.
70년 이후에 권력구조 상층부에 끼어 든 이용무는 군을 당 적으로 지도·통제하는 총 정치국장이다.
남북대화를 일방적으로 파기한 김영주의 8·28성명(73년)이 있은 지 6개월 뒤, 이용무는 북괴군 창 전 26주년 기념 보고 회(74·2)에서 그간 북괴가 자주 써 오던「평화 통일」이란 표현을「자주통일」이란 말로 모두 바꾸어 썼다.「대화」가 아닌「투쟁」으로 대남 정책을 바꾸어야 한다는 강 경 이론을 편 뒤 그는 당 정치위원과 군 총 정치국장이 됐다.
이용무를 군부의 정책이론가라고 한다면 김철만은 전략의 일인자다. 오진우가 김창봉·최광을 몰아낼 때의 이른바 현대전-혁명전의 배합이론은 바로 김철만의 창안이었다.
6·25 당시의 군 수뇌부가 지휘관 확보를 위한「혼합구성」이었다면 현재의 수뇌부는 노 혁명세대를 물려 앉힌「기능적 구성」을 이루었다고 할 수 있다.
이 새 군 수뇌부는 당내에서의 강경파일 뿐 아니라 특히 김정일의 등장과 때를 같이해 권력 핵심에 부상했다는 사실이 주목된다.
군부 실력자들의 면모는 다음과 같다.
◇오진우 대장(인민무력부장·총참모장·당 정치위원 겸비서·국방위부위장)
▲북평 출신·68세 ▲학력 미상 ▲사단장(6·25때) ▲군단장 ▲공군사참모장 ▲민족보위성부상 ▲군총정치국장 ▲「영웅」칭호 ▲해외여행-소련·중공·「루마니아」▲5척 단신·세모난 얼굴에 몸매는 깡마름 ▲당내 서열 7위
◇이용무 상장(정치위원·군 총 정치국장)
▲연령·학력 미상 ▲민족보위성 제1부 부소장(70·6) ▲총 정치국부국장 ▲군 수뇌부 중 최연소이며 총참모장 계승의 최 유력 후보 ▲당내서열 11위
◇전문섭 상장(김일성 경호책임·당정치 위원)
▲연령·학력 미상 ▲사단장·군단장·집단군사령관 ▲사회안전성부상 ▲「영웅」칭호 ▲당내서열 13위
오백룡 대장(노동적위대 총사령·국방위부위원장·정치위원)
▲동만주 출생·70세 ▲학력 미상 ▲유격대원 ▲여단장(6·25때) ▲김일성 호위책 ▲육운·해운상 ▲「영웅」칭호 ▲신장 165㎝·둥근 얼굴에 뚱뚱한 몸집 ▲당내서열 14위
◇한익수 상장(정치위원 겸 군사담당 비서) ▲동만주 출생·60세 ▲학력 미상 ▲정치장교(6·25때) ▲민청 평양시 위원장 ▲주「체코」대사 ▲주 중공 대사 ▲민족보위성부상 ▲군총정치국장 ▲당 서열 15위
◇김철만 상장(제1부 총참모장·정치위 후보위원) ▲약 60세 ▲민족보위성 작전참모(6·25때) ▲군 총사령부 작전국장 겸 군수국장 ▲「영웅」칭호 ▲중공파견군사 대표단 부단장 ▲당내서열 19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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