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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 뇌 만들었다, 걷는 기쁨 퍼뜨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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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홍진기 창조인상은 대한민국 건국과 산업 발전기에 정부·기업·언론 분야에서 창조적인 삶을 실천하는 데 힘을 쏟았던 고(故) 유민(維民) 홍진기
중앙일보 회장의 유지를 기리기 위해 2010년 제정됐다. 다섯 번째 영예를 안은 올해 수상자들은 시대를 선도하는 혁신적인 창의성을 바탕으로 기존 가치를 넘어 새 비전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심사는 이홍구 전 총리, 송자 전 교육부 장관, 송호근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김명자 전 환경부 장관, 오세정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교수, 강준혁 (사)한국문화의집협회 이사장, 유홍준 명지대 미술사학과 석좌교수가 맡았다. 이홍구 심사위원장은 “기성세대의 과거 업적을 포상하는 기존 상들과 차별화해 40대 연령 안팎 젊은 세대의 미래 가능성을 격려하는 데 중점을 뒀다”고 밝혔다.

“뇌에 새 창이 열렸다(A new window on the brain opened).”

 세계적인 과학저널 ‘사이언스(Science)’는 지난해 말 ‘올해의 10대 연구성과’ 중 하나로 정광훈(35)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화학공학·의공학·뇌신경과학과)가 개발한 뇌 투명화 기술(일명 ‘CLARITY’)을 꼽으며 이렇게 평했다.

 인간의 뇌는 흔히 ‘귀 사이의 우주’라고 불린다. 손안에 들어오는 작은 크기지만 그 안에는 수 ㎛(1㎛=1000분의 1㎜) 크기의 신경세포 1000억 개가 미로처럼 얽혀 있다. 인류는 그 안에 담긴 비밀을 풀기 위해 애써왔지만 아직 제대로 된 도구조차 갖고 있지 못하다. 뇌를 얇게 저민 뒤 촬영·합성해 3D 뇌지도를 구축하는 기술이 있지만 절단면의 신경세포가 손실된다. 기능자기공명영상장치(fMRI)는 해상도가 1㎜에 불과하다.

 정 교수는 스탠퍼드대 박사 후 연구원 시절 ‘발상의 전환’으로 이런 한계를 극복했다. 바로 뇌 자체를 투명하게 하는 방법이다. 뇌가 불투명한 것은 세포막에 있는 지방 때문이다. 하지만 지방을 빼면 신경세포 자체가 무너진다. 정 교수는 지방 대신 투명한 하이드로겔 용액을 주입해 ‘두 마리 토끼’를 한 번에 잡았다. 하이드로겔이 굳으면 묵이나 젤리처럼 되는 특성을 이용한 것이다. 그는 “병역특례로 근무한 중소기업에서 헤어젤을 만들었다. 그때 배운 젤 만드는 기술을 응용했다”고 밝혔다.

 정 교수는 이 기술로 생쥐의 신경세포 연결망을 fMRI보다 2000배가량 높은 500㎚(1㎚=100만 분의 1㎜) 해상도로 분석했다. 과학저널 ‘네이처(Nature)’에 연구 결과가 발표되자 “뇌 연구를 근본적으로 바꿀 성과”라는 극찬이 쏟아졌다. 여러 명문 대학의 ‘러브 콜’도 이어졌다. 정 교수는 그 가운데 MIT를 택해 자신의 이름을 딴 연구실(www.chunglab.org)을 차렸다. MIT는 그에게 역대 조교수 사상 가장 많은 연구비(250만 달러, 약 27억원)를 지원했다.

 그는 “고령화가 진행되면서 퇴행성 뇌질환으로 고통받는 사람이 늘고 사회·경제적 부담도 커지고 있다. 이를 해결하지 못하면 인류 번영에 큰 짐이 될 것이다. 뇌질환의 원인을 밝히고 치료법 개발을 앞당기는 게 과학자로서 목표”라고 말했다.

 그가 투명하게 한 생쥐의 뇌는 지름이 4㎜다. 사람의 뇌는 그보다 2000배쯤 크고 지방도 훨씬 많다. 정 교수는 “현재 인간의 뇌에 적용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 중”이라며 “올해 말이나 내년 정도면 성과가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정 교수는 미혼이다. 그는 “고교생(부산과학고, 현재 한국과학영재학교 ) 때부터 기숙사 생활을 해 혼자 사는 데 익숙하다. 부모님도 ‘알아서 하라’고 하시는데…”라며 웃었다. MIT에서 거액의 연구비를 받은 데 대해선 “연구 분야가 첨단기술을 개발하는 쪽이라 자원이 많이 든다. 그래서 평균보다 많이 받은 것이지 남들보다 잘나서가 아니다”고 말했다.

김한별 기자

◆정광훈 교수=1979년 부산 출생 ▶서울대 화학공학과 졸업(2005년) ▶미국 조지아공대 박사(2009년) ▶스탠퍼드대 연구원(2010~2013년) ▶MIT대 화학공학·의공학·뇌신경과학과 조교수(2013년) ▶BWF 커리어 어워드(과학 분야), 지글러 어워드(최고 논문)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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