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 뒤에 슬픔이, 슬픔 뒤에 무질서와 분노가 생존자들의 마음을 갈가리 찢어놓고 있다. 2500여 명의 목숨을 앗아간 지난 2일(현지시간) 아프가니스탄 북동부 산사태 이야기다.
6일 AP통신 등에 따르면 약 1000가구가 살던 바다흐샨주 아비바리크 마을은 말 그대로 폐허로 변했다. 약 5㎞에 이르는 산기슭 일대가 최고 높이 70m에 이르는 진흙더미에 파묻혔다. 2일 오후 첫 산사태로 주택 300여 채가 매몰된 뒤 구조 활동에 나선 이웃주민들마저 추가 산사태에 휩쓸리면서 희생 규모가 커졌다.
구조 작업이 소득이 없자 당국은 이튿날 수색을 중단하고 이 지역을 ‘집단 무덤’으로 선포했다. 샤 왈리울라 아뎁 주지사는 3일 “피해자들의 명복을 기원하며 5000명에 달하는 이재민 구호에 주력하겠다”고 말했다.
유족들이 이에 거세게 반발했다. 그러자 당국은 6일 이들이 가족·친지의 시신을 찾아 매장할 수 있도록 약 400명을 투입해 수색작업을 재개했다.
하지만 피해지역이 험준한 산악지대인 데다 진입로마저 흙더미에 유실돼 포클레인 등 중장비 반입도 불가능한 실정이다. 사태 발발 이후 현재까지 수습된 시신은 300구 정도에 불과하다. 주민들은 제 손으로라도 구하겠다며 삽과 괭이로 진흙더미를 파헤치고 있지만 불가항력이다.
살아남은 주민들은 추가 산사태에 대비해 안전지대로 대피했다. 유엔아프가니스탄지원단(UNAMA)과 아프가니스탄 적신월사 등이 음식·식수·의약품·텐트 등 구호품 공급에 나섰지만 턱없이 더딘 형편이다.
힌두쿠시산맥과 파미르고원 사이에 자리한 바다흐샨주는 아프가니스탄에서도 손꼽히는 빈촌이다. 하루 0.6달러(약 620원)로 살아가는 주민이 90만 명에 이른다. 빈곤율이 아프간 평균의 두 배다. 식수·전기도 없이 농사와 방목으로 연명하는 주민들에게 행정력이 미쳤을 리 없다. 전체 사망자 수를 가늠하기 어려운 이유도 인명 등록 등 기초통계가 안 되어 있기 때문이다.
피해자 구호도 주먹구구로 이뤄지고 있다. 피해 가구를 가려내는 역할을 마을 원로들에게 기대다 보니 이들과 친밀한 이웃 주민들이 피해자 행세를 하며 생필품을 타가는 일이 빈번하다. 형제자매와 조카들을 잃은 한 50대 남성은 “어제부터 기다렸는데 아무것도 받지 못했다. 원로들이 자기 친인척만 먼저 챙긴다”고 비난했다. 뉴욕타임스는 6일 “지방 관료 및 지도자들의 이해관계, 행정 인프라 부족 등 고질적인 문제가 구호 차질을 빚고 있다”고 지적했다.
하미드 카르자이 대통령은 4일을 산사태 피해자를 기리는 추모일로 선포하고 애도를 표했다. 대선 결선 경쟁이 유력시되는 압둘라 압둘라 전 외무장관과 아슈라프 가니 전 재무장관 등 많은 정치인이 방문했지만 ‘집단 무덤’을 배경으로 촬영한 사진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려 시민들의 분노를 샀다.
중앙아시아 내륙국인 아프간은 대부분이 산악 지형으로 지진대에 걸쳐 있는 데다 부실한 진흙가옥이 많아 자연재해에 취약하다.
강혜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