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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정부와 「북괴대표단」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정치활동은 않겠다』는 조건하에 일본에 입국한 이른바「북괴대의원」단장 현준극(전 주 중공 대사)은 11일 밤「하네다」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정치적 언동을 서슴지 않았다.
현은 공항 기자회견에서 『「카터」미 대통령의 주한미군철수 약속을 지켜보겠다』는 등 대한비난과 아울러「후꾸다」내각에 정치적 주문을 한 것으로 외신은 전하고 있다.
우리는「북괴 최고 인민회의」대의원이요, 「대외연락협회 부위원장」인 현을 단장으로 하는「대표단」의 구성이나 그 입국허가 과정에서 보여준 일본정부의 모호한 태도로 미루어 처음부터 이들의 방문목적이 다분히 정치적 목적을 겨냥하고 있음을 예견하지 못했던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우리는『북한으로부터 입국 후 정치활동을 않겠다는 약속을 받았으며, 약속을 어길 경우 출국조치까지 불사하겠다』는 일본정부의 공식통보조차 있었던 터라, 북괴의 속성에 대한 의구심을 잠깐 접어두고 일본정부의 신의를 주시해왔던 것이다.
북괴「대표단」이 표면상으로는 경제적 임무를 띈 비정치적 집단으로 되어있지만, 실질적으로는 정치대표단임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한국과 미국을 비난하는 발언은 차치 하고라도 「후꾸다」정부에 대해 주한미군철수에 반대하지 말 것과 한국정부를 뒷받침하거나 두개의 한국을 획책하는 움직임을 조장하지 말라는 등의 주문을 한 것은 단순히 정치적 발언의 단계를 넘어 일본에 대한 내정간섭의 성격마저 띄고 있다고 봐야할 것 같다.
일본정부가 이 같은 정황을 알고도 적절한 규제를 취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다시 한번 일본정부의 의도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북괴 측은 그들의 발언이 일본기자들의 유도질문에 대한 답변에 불과하다고 강변할는지 모른다. 일본정부가 이와 같은 북괴 측의 변명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아직 알 수 없으나, 만약 이미 행한 현준극의 정치적 발언을 이 범주 속에 포함시킨다면 우리로서는 중대한 우려를 표명하지 않을 수 없다.
생각컨대 사회·공산당 등 일부 일본야당들이 북괴 관계 개선을 주장해온 것과 국교도 없는 북에「대표단」일본에 와서 비슷한 발언을 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다. 일본정부가 후자의 행위를 묵인한다면 남이 자기 안방에 들어와 호통치는 것을 용납하는 우스운 꼴이 되며, 또 현의 발언이 정치적인 것을 시인하면서도 응분의 조처를 취하지 않는다면 한국정부에 대해 약속위반을 했다고 밖에 볼 수 없다.
아울러 우리는 차제에 일본정부가『한반도의 유일 합법정부가 한국』이라는「유엔」결의를 확인한 한일 기본조약 정신을 준수할 것을 재 촉구하며, 소위「정치적 언동」에 대한 납득할 만한 기준을 제시해 주기를 바란다.
그렇지 않고 일본정부가 참의원 선거대책의 일환이나 대륙붕 협정비준 문제를 두고 대한견제용 등으로 한국에 대한 약속 위반을 다반사로 한다면 전통적 한일우호가 불편한 상황으로 전개되더라도 이는 전적으로 일본의 책임이 될 것이다.
한편 우리 정부는 일본의 북괴「대표단」입국 허용이 북괴와의 조경을 위한 계산된 과정 중 일부가 아닌가를 면밀히 분석하고 미국의 구 적대국관계 개선 정책과 어떤 연관을 가지고 있지 않는지를 주시해야 할 것이다.
만의 하나라도 일본 같은 우방이 공산권과의 문호개방 의사를 밝힌 우리의「6·23」선언을 역이용. 그들의 국내적 욕구를 충족시키기에 급급하는 일이 벌어져서는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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