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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오버'는 '오버'가 아니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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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서승욱 기자 중앙일보 정치국제외교안보디렉터
서승욱
도쿄특파원

2년 전 5월 8일자 이 코너에 썼던 칼럼을 다시 읽어 봤다.

 칼럼의 계기가 됐던 사건이 발생한 지 2주년을 맞아 일본에서 희생자 추도식이 열렸기 때문이다.

 ‘때론 일본의 오버가 부럽다’는 칼럼은 2012년 4월 29일 새벽 발생한 버스사고에 대한 일본 사회의 태도를 다뤘다.

 골든위크로 불리는 황금연휴 초입에 터진 사고였다. 동해에 접한 이시카와현에서 승객 45명을 태우고 오후 10시에 출발한 관광버스는 29일 아침 도쿄 인근 디즈니랜드에 도착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군마현을 통과하던 버스는 오전 4시40분쯤 운전사의 졸음운전으로 철제 차단벽을 들이받았다. 승객 7명이 사망했고 38명이 다쳤다. 당시 일본 언론들은 한동안 이 뉴스만 보도하다시피 했다. 열악한 운전 여건이 졸음운전을 초래한 게 아닌지, 무리한 저가 경쟁이 부른 사고가 아닌지의 논란이 연일 일본 사회를 뒤흔들었다. 결국 일본 국토교통성은 여행사가 고객을 모아 버스업체에 운항을 위탁하는 고속관광버스를 폐지했다. 버스 운전기사의 하루 최장 운전거리도 종전 670㎞에서 400㎞로 줄였다. 도쿄 부임 뒤 채 1년이 안 된 특파원의 눈엔 일본 사회의 대응이 너무 호들갑스럽다는 생각이 든 것도 사실이다.

 그 사고로부터 2년이 지났지만 일본 사회는 사고를 잊지 않았다. 사고 발생 시간인 지난달 29일 오전 4시40분에 맞춰 군마현의 현장엔 유족 27명이 모였다. 이들은 “이런 사고가 없는 세상이 되길 바란다”는 간절한 희망을 나타냈다. 사고 버스회사의 사장도 이 시간에 맞춰 현장을 찾았다. 그는 말을 아낀 채 유족들에게 두 번 세 번 머리를 조아렸다. 일본의 방송과 신문들은 이 모습을 주요 뉴스로 다루며 재발 방지에 대한 결의를 다졌다. 이에 앞서 지난 3월 말 일본 군마현의 법원은 “졸음을 느끼면서도 운전을 계속한 것은 인명을 책임진 프로로서 용납될 수 없는 비상식의 극치”라며 사고 버스 운전사에게 징역 9년6개월의 중형을 선고했다.

 우리나라에서 신문이나 방송에 보도될까 말까 한 사고들도 일본에선 주요 뉴스로 다뤄질 때가 많다. 군마 버스사고 2주년이 그랬듯 아무리 사망자 수가 적은 사고라도 언론들은 ‘XX사고로부터 한 달’ ‘사고 X개월이 지난 지금은’이란 계기를 만들어 일본 사회 전체가 아픈 교훈을 되새기는 기회로 삼는다.

 세월호 사고에 대한 일본 사회의 관심은 상상을 초월한다. 스무 명에 가까운 취재단을 진도에 파견한 TV아사히 등 일본의 언론들은 세월호 관련 소식을 계속 주요 뉴스로 내보내고 있다. 이번 사고를 자기들의 안전의식을 되돌아보는 거울로 삼겠다는 의도도 담겨 있다.

 세월호의 비극을 겪으면서 2년 전 일본 사회의 안전 민감증을 ‘오버’라고 표현한 글이 부끄러워졌다. 안전의식에 있어선 지나침이 모자람보다 백배 낫다는 것을 절절히 느낀다.

서승욱 도쿄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