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록지 인턴의 세상일기] "나였어도 그랬을 거야" 대학생 4인에게 들어본 세월호 침몰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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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중앙일보 포토 DB]

'배가 기운다. 방송에서는 가만히 자리를 지키라 한다. 선실 밖에 있는 사람들이 걱정된다. 시키는 대로 해야지, 저러다 큰 일 나면 어쩌려고. 우리는 의심하지 않았다. 살 거라고, 믿었다.'

“나였어도 그랬을 것 같아.”
4월 29일, 동국대 캠퍼스에서 네 명의 대학생들을 만났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3~ 4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모두 수학여행도 다녀왔다. 대학생들은 세월호 참사는 전적으로 어른들 잘못이라고 생각한다. 이들도 어른이다. 하지만 완전한 어른은 아니다. 딱히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대학생들은 ‘피해자’와 ‘가해자’ 사이다.

북한 금강산으로 수학여행을 다녀온 이지훈(23, 고려대)씨는 그때는 위험한지 몰랐다고 한다. 인민군에게 표를 건네주기도 했다. 하지만 안전 지침은 딱히 없었다. ‘북한 사람들 자극하지 마’ 정도였다. 다녀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북한에서 관광객이 피살당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이후 금강산 관광이 중지됐다. 그제야 위험성을 알았다. 고등학교 동창인 박종억(23, 동국대)씨 역시 “누가 피살당했다는 걸 들으니 아찔했다”고 말했다.

전아영(22, 경희대)씨는 일본으로 배를 타고 수학여행을 다녀왔다. 약 13시간 동안 배를 탔다. 학교에서 배 관리 상태나 안전 수칙에 대해서 얘기해 준 적은 없었다. 5년 전 자신은 학교를 믿었다. ‘학교’니까 안전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아무것도 믿을 수가 없다고 했다.

전 씨에게 수학여행은 가장 기억나는 추억이다. 종종 고등학교 친구들과 수학여행 이야기를 하며 웃었다. 단원고 아이들에게는 가장 아픈 추억이 될 생각을 하니 슬프다고 했다. 이 씨 역시 아이들이 느꼈을 신나고 행복했을 감정이 무엇인지 너무나 잘 알아서 괴롭다. 조성은(22, 고려대)씨는 동생이 대학교 신입생이다. ‘내 동생이 저기 있었더라면’ 하는 생각을 하면 눈앞이 캄캄해진다고 했다. ‘동생이 무사해서 다행이다.’라는 생각이 미안할 만큼 슬펐다.

아픔에 공감하는 만큼 무력감도 크다. 학교에 다니고 있으니 진도로 직접 자원봉사를 가기도 힘들다. 돈을 벌지도 못하니 선뜻 기부를 하기도 힘들다. 나이만 어른이고 사회적 주체로서 ‘어른’은 아직 아니었다. 할 수 있는 게 노란 리본을 다는 것 정도다. 나는 왜 이렇게 무기력할까.

대학생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없는 걸까. 조 씨는 ‘진실’에 대해 생각을 많이 했다. 보고 들은 것에 대해 한 번 더 의심해보고 생각해봤다. ‘앞으로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할 수 있을까’에 대해 생각하는 게 지금 세대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일이라고 본다.

‘그런 못난 어른’이 되지 않을 자신이 있느냐고 물었다. 대답은 부정적이었다. “이미 이 사회의 일부분이다. 사회를 믿을 수 없고, 나 자신조차도 믿을 수 없게 됐다.” 하지만 미약해 보여도 대학생들은 조금씩 움직이고 있다. 4월 30일, 홍대 앞에서는 특이한 시위가 열렸다. 한 대학생이 제시한 ‘스탠딩 맨 시위’다. 검은 옷에 흰 마스크 차림의 사람들이 모여 있다. 구호는 외치지 않았다. 다만 ‘가만히 있으라’고 적혀 있는 피켓을 들었다. 꼼짝하지 않고 서 있는 수십 명의 대학생들. ‘그런 어른’이 되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었다.

남록지 인턴기자 rokji126@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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