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8)제54화 배재학당(54)-고종황제가 1886년 하사한 현판의 글씨|<제자·윤성열>윤성열|배재출신 문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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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1920년대 배재출신 중에는 유명한 문인들이 많다.
방인근·나도향(빈)·박팔양·김팔봉·김소월 등이 모두 배재 출신이다. 1917년 학당을 졸업한 방인근이 가장 선배고 나머지는 모두 고보 출신으로 김소월(7회)이 막내다.
충남 예산출생인 방인근은 배재학당 시절에는 비교적 과묵한 편이었으며 문학에 큰 소질을 가진 것 같이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배재학당을 졸업한 후 도일, 동경 청산학원 중등부를 거쳐 중앙대학에서 수학하고 귀국한 후부터 문학에 심혈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1924년 전 재산을 투입, 순문예지『조선문단』을 창간하고「프로」문학에 대항한 민족주의 문학을 적극 옹호했다.
이 문예지를 통해 배출된 문인으로는 채만식·박화성·이장희 등이 있다. 그는 해방후 한때 탐정소설을 시도하기도 했는데 크게 주목을 끌만한 작품은 발표하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고보 2회 졸업생인 나도향은 서울 출생으로 본명이 경손이었다. 배재 시절부터 문학에 열중했던 그는 졸업 후 경성의전에 입학했으나 문학수업을 위해 끝내 가족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몰래 도일했다.
집에서 학비를 전혀 보내주지 않아 곧 귀국, 안동에서 1년 동안 보통학교 교사노릇을 하며 같은 학교에 근무하던 일본인 여교사와 열애에 빠졌었다.
그는 이「로맨스」를 소재로 1926년 중편『청춘』을 발표, 큰 인기를 모으기도 했다. 처녀작『추억』(1921년)을 발표한 후『백조』동인에 가담, 문단활동을 계속했다. 1926년 한때 도일했으나 곧 귀국했다.
귀국후 일정한 거처 없이 방황하며 폭음하다가 폐를 앓기 시작, 다음해 25세의 젊은 나이로 요절하고 말았다.
그는 짧은 기간 동안에 많은 작품을 남겼고 특히『물레방아』『벙어리 삼룡이』등에서와 같이 1920년대 한국인의 비애를 상징적으로 잘 표현했다.
경기도 수원 출생인 박팔양(고보 4회)은 배재 졸업 후 경성법전을 나왔다. 김여수란 필명을 가졌던 그는 시인으로 활동하는 한편 조선·중외·조선 중앙일보 등의 사회부장을 역임, 언론인으로서도 크게 활약했다.
고보 졸업 다음해인 1921년부터 정지용 등과 시동인지『요람』에서 활동하기 시작했다.
1925년「카프」맹원으로 가담하기도 했던 그의 시는「다다이즘」이 가미된「프롤레타리아」적 색채가 짙었다.
『신시운동 개관』등 평론도 남긴 그는 해방이 되면서 월북했다.
본명이 기진인 김팔봉(5회)은 배재고보를 4학년 때 중퇴했으나 후에 졸업장을 얻어 졸업생으로 인정받고 있다. 문학수업에 뜻을 두고 도일, 입교대학 영문학부 예과를 거쳐 본과에 진학했다가『토월회』라는 신극단체의 조직을 위해 귀국한 이후 현재까지 문학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진달래꽃』『산유화』등으로 유명한 소월 김정식은 천재형의 미남아였다. 평북 정주군 곽산면의 한 완고한 유가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13세에 조혼, 일본유학을 원했으나 할아버지의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15세 때 오산학교 중학부를 중퇴하고 서울로 올라와 배재고보에 입학했다. 1923년3월1일 졸업한 그의 성적은 각과 평균이 90점으로 우등생이었다.
소월은 배재 재학 중 서신으로 할아버지를 설득, 1923년 일본으로 건너가 동경 상과대학에 입학했다. 문학적 소질이 풍부했던 그가 상과대학을 택한 이유는 문필로는 먹고살기가 어렵다는 당시의 일반적 사회 통념 때문이었던 것 같다.
동경 유학은 할아버지의 광산 경영실패로 학비조달이 불능해져 1년만에 중퇴하고 말았다. 귀국해서 서울 청진동에 하숙을 정하고 문필로 생계를 세울만한 취직자리를 찾았으나 실패하고 고향인 곽산으로 갔다.
소월은 이때 서울을 떠나면서『서울 밤』이라는 그의 실망한 심정이 잘 묘사된 시 한편을 남겼다.
고향에서 2년 동안을 우울하게 지내다가 처가가 있는 압록강 근처의 남시로 생활처를 옮겼다.
여기에서 신문지국을 경영해보고 대금업도 벌였지만 모두 실패하고 비애와 절망을 술로 씻으려 했다. 그의 걸작 시들 중에는 남시에서 10년 동안 살 때 쓴 것들이 많다.
그는 끝내 어려운 생활을 극복하지 못하고 1935년 33세의 젊은 나이로 요절하고 말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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