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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나를 흔든 시 한 줄

자승 조계종 총무원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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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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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

- 만해 한용운(1879~1944) ‘님의 침묵’ 중에서

만해 스님은 선사(禪師)이자 시인이며, 독립운동가이자 시대를 읽어내는 정신의 지도자였다. 지금도 다양한 분야의 지성인들에게 삶의 열정을 지속적으로 심어주는 스승과도 같다. 매년 8월, 강원도 인제의 만해축전을 찾아 스님의 덕화에 숙연함으로 마주하면 한 사람의 각성과 용기 있는 실천이 거대한 파동으로 다가와 곁에 있는 듯 깊은 울림을 전해온다.

 오래전 조화로운 삶과 배려의 관계에 대해 깊은 관심에 들어선 때가 있었다. 때마침 읽은 ‘님의 침묵’은 전과 다르게 새로움으로 내 마음을 흔들어 놓았다. 흔히 배려라 함은 상대방을 대상으로 하여 도와주고 보살피는 일이라 하겠지만, 이때만큼은 이 시구절을 되뇌며 ‘나 자신에 대한 배려가 있구나’라는 강한 인상을 새기게 되었다.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는다’는 것, 강한 의지와 믿음은 어떠한 상대방도 아닌 나를 위한 너무도 소중한 배려라는 것이 ‘님의 침묵’이었다.

 우리는 슬픔과 고통 속에서도 희망을 찾아나간다. 인간은 그렇게 본래의 품성으로써 생명을 존귀하게 여기는 동시에, 이에 따르는 자신의 의지로 스스로를 보살피는 강한 의지를 가지고 있는 존재다. 내 마음에 감춰져 얼핏 보이지 않듯이 침묵에 숨어 있는 경전과도 같다.

 최근 국민 모두가 큰 아픔과 슬픔에 빠져 있다. 하지만 나는 믿는다. 우리 국민은 스스로 사랑을 깨치는 줄 아는 까닭에 새 희망을 만들어 갈 것을.

자승 조계종 총무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