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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배 <시인·출판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인도 유학 수속을 밟고 있다는 승려 시인 S가 며칠전 찾아왔다. 자기의 의지이기보다는 철 모르는 나이에 어머니의 손에 잡혀 절에 맡겨진 채 가족과는 절연이 되었다는 S, 그가 어떻게 불우를 벗고 오늘을 쟁취했는지를 묻는 내게 『책을 사 볼 돈이 어디 있었나요. 읽고 싶은 책이 있으면 이 책방에서 몇 「페이지」, 저 책방에 가서 그 다음 몇 「페이지」씩 읽어 나갔지요』하고 말한다.
책 가난은 나만큼 겪은 이가 없을 거라고 자부하던 나도 그만 S앞에서는 코를 싸쥐고 말았다. 더구나 S는 나보다도 너댓살 아래, 책 형편이 많이 나아진 뒤의 일이다.
내가 국민학교에 입학한 것은 해방 다음해, 국어 교과서도 없이 선생님이 칠판에 쓰는 가갸거겨를 익혔다. 그로부터 어린이에게 해롭다는 만화책은커녕 교과서도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공부랍시고 해왔다. 소설을 읽기 시작한 국민학교 4, 5학년 때부터는 10리 20리 길을 찾아다니며 빌려온 책이 묘지도 없이 몇장씩 떨어져 나간 것이 고작이었다.
그런데 요즈음은 종로를 지나다가 책방에 들어서면 눈이 부시다. 내가 책을 만들어 파는 직장에 몸을 담고 있대 서가 아니라 몇권 팔릴까 싶지 않은 책들도 곧잘 출판이 되어 나오는 것을 보면 우리 나라의 「출판의 양심」을 읽을 수 있다.
닭이 열마리면 봉이 하나라고, 질도 운에 비례되는 것이고 보면 지금 자라나는 세대에게는 책 가난은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책값이 없어서 교과서 없는 수업 시간을 맞는 불행도 이제는 없어졌으리라는 생각에 마음이 놓인다.
그런데 최근에 1백27억원의 엄청난 교과서 부정이 있었다고 해서 문교부의 관리들이 해직되고 출판계는 몇원씩의 추징금 배당으로 전차에 받친 사람처럼 혼수 상태인 모양이다.
교과서 값에 설움을 받았던 나로서는 2세 교육의 기본 도서인 교과서 공급에 부정이 있었다는 기사에 맨먼저 삭일 수 없는 노여움이 치받친다. 그러나 뒤이어 이름 있는 큰 출판사들이 도산의 위기에 몰렸다는 소식은 그렇게 개운하지만은 않다.
교과서로 돈을 벌어서 그 많은 학술 서적 한권 창작집 한권 내지 않고 고리 대금을 해온 세칭 몇몇 「교과서 업자」는 밉기 그지없지만 일반 출판물에 다시 돈을 집어넣어서 책과 지형을 만들어 낸 출판사들이 몇억원의 돈을 어떻게 마련해 벌는지? 그나마 뿌리 잡혀가는 이 땅의 출판 문학에 침체를 가져오는 교각 살우의 그 후환이 적이 걱정스럽다.
2년전인가도 부교재가 폭리를 한다고 해서 파란이 있었다.
그때도 태산명동에 서일필로 일확천금의 출판사는 없었던 모양이다. 설령 10년, 20년 출판으로 재산을 늘렸다 하더라도 크게 죄 될 일은 아니다. 능력 있는 사람이라면 출판이 아니고 수출 업이나 다른 생필품 제조를 했더라면 더 큰 재벌이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또 그래도 사회에 되돌려 주면서 장사를 하는 것은 아무래도 출판이 아닌가 싶다.
몇만부씩 팔리는 「베스트셀러」를 만들어 내기란 쉬운일이 아니거니와 그 반대로 몇백부도 팔리지 않는 책을 만드는데가 출판사이기 때문이다.
교과서나 부교재나 단행본 출판사들이 모두 폭리 내지는 부당 이득을 취한 것이라면 그간에 수없이 도산한 출판사와 지금도 부분에 허덕이는 출판사는 부당 결손을 본셈인가?
이 나라의 경제가 성장하는것만큼 부작용과 부조리를 짊어진 것이라면 우리의 출판 문화도 그런 요소를 완전히 배제할 수 는 없었을 것이다. 교과서 부정 문제만 하더라도 누적된 부조리의 책임을 해당 출판사에 일거에 씌우기보다는 우리의 사회가 공동으로 짊어지고 근원적으로 함께 치유해갈 일이 아닌가 싶다.

<필자 약력>
▲1940년 충남 출생
▲중대 예대 문창과 졸업
▲제2, 3회 문공부 신인 예술상 수상
▲한국 문인 협회 이사, 국제 PEN 한국 본부 이사
▲현재 월간 「한국 문학」·동화 출판 공사 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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