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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 대지면적 45평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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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오늘날 세계의 모든 대도시들이 안고 있는 공통의 문제점의 하나는 곧 숨막힐 듯한 과밀현상이다.
이 같은 과밀현상 때문에 도시의 외관적 측면인 「도시미관」 및 「근린과의 조화」가 깨질 뿐 아니라 시민들의 의식구조를 반영하는 「사회적 건강」에까지 악영향이 미치게 된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특히 우리 나라 수도 서울의 과밀화 현상과 이로 인한 갖가지 난제들에 대해서는 세계적인 악명이 자자하다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1960년대 이후 서울은 일관성 없는 도시개발 정책과 무원칙한 외형적 팽창 및 확장추세, 근시안적인 건축법 때문에 「아름다운 도시 만들기」는 커녕 오직 과밀화·대형화에만 치닫게 됨으로써 도시기능조차 제대로 발휘되지 못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던 것이다.
정부가 이번에 인구재배치 계획에 따른 건축규제 조치의 일환으로 수도권 안에서 주거용 건축을 지을 경우, 대지 하한선을 현행 27평에서 45평으로 높이고 건폐율과 용적율을 크게 내리는 것 등을 내용으로 한 수도권 건축 규제 방안 시안을 마련한 것은 늦은 감이 있긴 하나 문제의 본질을 바로 파악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서울은 도심지에서 변두리 주거지역에 이르기까지 고층·단층 건물이 뒤섞여 잡거상태를 이루고 있는가 하면, 중랑천변과 변두리 구능·경사지대, 도심지 불량주택가 등은 작은 집들이 게딱지 같이 붙어 있다.
두겹 세겹으로 성냥갑 같은 「불록」집들이 늘어선 이 불량주택가에는 사실상 손바닥만한 마당도 화단도 없을뿐 아니라 골목길은 소방차는 말할것도 없고 손수레조차 들어갈 수 없을 정도다.
조금 낫다는 주택가에서 마저도 옆집과 앞 뒷집의 추녀가 거의 맞닿을 정도로 과밀상태를 이루고 있음은 역시 마찬가지다. 이 때문에 일조·채광·통풍 등을 서로 방해할 뿐 아니라 남의 집안이 훤히 들여다보이거나 옆집의 말다툼·전축소리까지 들려 이웃간 반목과 시비의 불씨가 되고 있는 실정이다.
왜 이렇게 되었는가. 변두리 지역으로 시가지가 급속히 평면 확대되는 한편 기존 시가지에서의 무허가 판자촌과 불량지구의 재개발이 추진되는 가운데 이 같은 과밀현상이 일어난 것이다.
무주택 가구가 절반에 가까운 심각한 서울의 주택난 해소를 위해 소형주택 건설을 권장하고, 사람이 거처하는 집을 짓기에 적당하다고 하기 어려운 27평의 대지 위에도 건축을 허가했기 때문이다. 또 가파른 고지대와 급경사지 또는 침수지역에서도 무허가 건축을 방치했거나 제대로 단속하지 않았던 탓이다.
이런 난맥상을 빚게된 데에는 우리 나라 도시계획법과 건축법 등 관계 법규에 근본적인 결함이 있기 때문임은 말할 것도 없으나, 그 나마 법에 정해진 규정마저 지키지 않았던 탓이라고 하겠다.
정부가 이번에 수도권 주택의 대지 하한선을 높이고 건폐율과 용적율을 끌어 내리게 함과 함께 무허가 불량 건물의 사용권을 현거주자에게 한정키로한 규제조치는 수도권 주택들의 환경정화를 위해 적지않은 도움이 될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예로 봐서 이것이 흐지부지 돼버리거나 하루 아침에 번복·변경이 돼버리지는 않을지 도무지 믿음직스럽지 못하다. 조령모개식으로 시민들에게 불편과 손해를 안겨 주거나, 예정된 도시계획의 추진에 차질을 가져와선 안된다는 것이다.
아름다운 서울, 살기 좋은 탁 트인 서울을 만들기 위해서는 대지면적·건폐율·용적율 등의 규제만이 아니라 용도지역·환경기준·근린과의 조화의 면도 아울러 다루어야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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