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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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오늘이 춘분이라지만 아직도 아침바람은 제법 싸늘하다. 그럴 수밖에 없다.
겨울을 끼고 있기는 봄이나 가을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나 봄의 평균기온은 가을보다 10도 가량이나 낮은게 보통이다.
그래도 봄이려니 하고 기뻐하는 것이다. 그러면 몸도 마음도 훈훈해지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봄의 시에는 어딘가 모르게 너그러운데가 있다. 같은 사랑의 시라도 가을에는 실연을 주로 서러워하고 봄에는 사랑의 설레임을 노래한다.
이것은 동양이나, 서양이나, 다를 바 없다. 그러나 동양의 시인들은 같은 봄이라도 무조건 반기지는 않는다. 어딘가 애수의 눈으로 봄을 보는 버릇이 있다.
…푸른 들은 샛별에 잠들고 제일 나이든 사람이나 제일 젊은 사람이나 제일 힘센 사람과 함께 일한다….
「워즈워드」의 3월의 시다.
이 속에는 조금도 그늘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저 근로의 즐거움과 자연에의 고마움이 풍겨 있을 뿐이다.
한시에서는 그렇지가 않다. 봄을 노래한 당대의 위장의 시를 보면
…수수춘누단 막소금배만
우주단가가 인생능기하
봄의 밤이란 단숨에 지난다.
오술잔의 술이 넘친다고 탓하지 마오.
술의 얼굴을 보고 웃어만 주오.
인생 길어야 얼마나 길겠소.
그저 퇴폐적이라서만은 아니다. 바로 앞귀절은 이렇게 나간다.
오늘밤은 만취해 봄이 어떻소.
술통 앞에서는 내일 일을 말하지 마오.
이 주인의 마음을 아껴주오. 한잔 두잔 더 하는 사이 정 또한 두터워지느니.
향락적이라서만도 아니다.
그저 인생을 보는 눈이 다른 것이다.
『인생능기하』하는 시구는 한시에서는 흔히 나온다. 조조도 <단가행>이라는 시를 이렇게 시작하고 있다.
『대주당가 인생기하 비여조로….」
서양의 시인들은 낙엽지는 가을이 되어야 인생의 허무함을 노래했다. 동양의 옛 시인들은 새싹이 트는 봄에 이미 짧은 인생을 서러워했다.
어찌 보면 그만큼 탐육적이었다고 볼 수도 있다. 너무나도 봄이 아름답기에 언제까지나 봄을 즐기고 싶은 생각이 난다는 반어적인 뜻도 있을 것이다.
조조는 같은 시에서 그렇게 인생이 짧을 바에야 빨리 뜻을 얻어 출세해야겠다고 노래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봄은 같다.
인생의 길이에도 변함은 없다.
그러나 봄을 보는 눈만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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