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눈치보는 일본|김경철<본사 동경특파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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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오는 21, 22일의 미일 정상회담을 앞두고 주한미군 철수와 관련된 일본정부의 입장은『한반도의 균형을 무너뜨리는 일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테두리만 드러났을 뿐 구체적으로는 밝혀지지 않고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일본정부 관리들의 한반도 문제와 관련된 발언들을 종합해 보면 일본측의 기본 입장은 우선 두 가지로 요약해 볼 수 있다. 「카터」미대통령이 최근 기자회견에서『주한 미군철수는 일본의 완전한 이해와 참여 하에 실행할 것』이라고 강조했으나 일본측은『이 문제는 근본적으로 한미간의 문제이므로 개입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둘째는 일본측은『한반도의 정화와 안정이 일본을 포함한 동북「아시아」에 깊은 관련이 있다』는 이른바「신 신한국조항」을 미국측에 확인시키려는 정책이다.
일본의「불개입론」에 따르면 미국의 대일 협의 방침은 의미가 없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그러나 일본은 주한미군 철수문제가 한미간의 문제라고 보면서도「근본적」이라는 단서를 붙이고 있어 미일간의 협의가 실질적으로는 이루어질 것이나 이를 될 수 있는 대로 표면에 드러내지 않고 막후에서 영향력을 행사할 것임을 시사하고 있다.
주한미군 철수에 관한 이 같은 일본의 기본 입장에는 국내 정치상황에 대한 배려와 정부자체의 의도 사이의 차이를 절충하려는 고민이 엿보이는데 그 구체적인 내용이 표면에 드러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종래의 일본의 기본 인식은「닉슨」·「사또」공동 성명의 이른바 한국조항으로 명시된『한국의 안전이 일본의 안전과 밀접한 관계에 있다』는데 이론이 없었다.
그러나「한국조항」으로부터「카터」·「후꾸다」회담에서 일본측이 구상하고 있는「신 신한국조항」에 이르기까지 일본의 기본 인식은 한반도의 안전이 일본의 안전과 직접·간접으로 관련성이 있음을 공통적으로 지적하고 있으나 개념에 변화가 있었다.
즉 주한미군철수 문제가 대두되고부터 거론되기 시작한 불개입론은 일본의 기본입장이 주한미군철수 문제가 대두되기 시작한 직후 나왔던「철수반대」라는 강경한 입장과는 거리가 있는 것이다.
일본의 외교평론가「이노우에·시게노부」씨는 주한미군철수 문제를 계기로 한반도 정세와 일본의 안전의 관련성에 대한 개념이 변화한 것과 새로 불개입론이 대두된 것을 일본의 국내사정과 관련시켜 풀이하고 있다.「신한국조항」이 나왔을 때까지의 일본의 정치 정세는 안보정책을 장애 없이 펴갈 수 있었으나 이제 집권 자민당은 여야 백중의 정치판도에서 야당을 의식, 새로운 한반도 정세 인식론을 내세우지 않을 수 없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일본 방위청의 견해는 주한 미 지상군이 한국 및 일본을 포함한 동북「아시아」에 있어서의 군사면에서 뿐만 아니라 정치적·경제적으로 중요한 의미가 있는 것으로 되어있다.
「카터」-「후꾸다」회담에서는 구체적으로 방위분담이나 한반도의 유사시 미군의 주일기지 사용, 일본 자위능력 증강책, 이외에 대한 경제협력 강화 등이 거론될 것으로 일본 군사전문가들은 전망하고 있으나 일본은 헌법에 규정된 자위의 규모와 기능에는 한계가 있다는 점을 내세워 방위 분담에 난색을 표시할 것으로 전망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결국 현 단계에서는 한반도와「아시아」의 안정을 위한 일본의 역할이 무엇인지에 관해서는 공개적으로 문제를 제기하지 않겠다는 것이 일본의 정책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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