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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국민을 생화학무기로 죽이고 발뺌하더니 결국…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시리아 정부군이 반군 장악 지역에서 새로운 화학무기 공격을 재개했다는 의혹이 일부 사실로 확인됐다.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는 29일(현지시간) “최근 화학무기 공격이 이뤄진 것으로 의심됐던 피해지역의 토양 시료를 검사한 결과 독성이 강한 염소와 암모니아가 검출됐다”고 보도했다. 시리아 반정부 운동가들과 프랑스, 미국 정부 등이 바샤르 알 아사드 정권의 화학무기 재사용 의혹을 제기하면서도 뚜렷한 증거를 제시하지 못한 상황에서 나온 첫 과학적 분석 결과다.

텔레그래프는 “지난 11일과 18일·21일 시리아 하마주 카프르지타 등 독가스 공격이 이뤄진 세 곳에서 토양 시료를 채취해 전문가와 함께 정밀 검사를 벌였다”고 밝혔다. 검사에 참여한 영국의 화학무기 전문가 드 브레튼-고든은 “각각의 시료에서 염소의 증거를 발견했고 카프르지타의 토양에선 암모니아 흔적도 확인했다”고 덧붙였다. 그는 또 “시료 분석과 별도로 독가스 공격 당시 촬영된 사상자들의 비디오 동영상과 스틸 사진 등 관련 자료들도 정밀 분석했다”고 설명했다.

지난 2주간 반군이 장악한 시리아 서북부 이들리브 주의 도시와 마을 8개 지역에선 독가스 공격이 자행됐다. 타마나 지역에선 어린이 등 3명이 숨졌고 수백 명이 호흡기 등에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 신문은 비디오 동영상과 목격자들의 진술에 따르면 “부상자들은 특별한 외상이 없는 대신 눈과 피부의 통증, 호흡 곤란과 입에서 피를 토하는 등 염소 가스와 암모니아 중독의 전형적인 증상을 나타냈다”고 전했다.

일부 피해 주민들은 “헬리콥터에서 화학물질 표시가 돼 있는 용기가 떨어졌다”고 증언했다. 시리아 내전에서는 오로지 정부군만 전투기와 헬리콥터를 이용해 공중 공격이 가능하기 때문에 반군이 아닌 정부군의 소행이라는 사실을 뒷받침한다.

시리아는 전쟁 시 생물학 무기와 화학 무기의 사용을 금지하는 제네바의정서 서명 국가다. 1925년 스위스 제네바에서 체결된 의정서에 따라 평시엔 염소와 암모니아 등 독성이 강하고 질식 위험이 높은 가스를 생산하거나 보유할 수 있지만 전쟁에서 무기로 사용해선 안 된다.

문제는 시리아 화학무기 사찰과 제거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화학무기금지기구(OPCW)의 제거 화학 물질 항목에 염소와 암모니아는 포함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염소의 경우 수질 정화·오염물 제거 등 일상 생활과 산업 분야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많은 양이 사용되고 있기 때문에 사용 자체를 금지할 수 없다.

OPCW는 29일 “화학무기 공격의 의혹을 조사하기 위해 진상 조사단을 시리아에 파견하겠다”고 밝혔다. 일단 시리아 정부도 “진상 조사단을 받아들이고 그들의 안전도 보장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시리아 정부는 “염소와 암모니아 공격 혐의는 근거 없는 주장”이라며 강력 반발하고 있다.

시리아 정부의 화학무기 재사용 의혹은 그 동안 꾸준히 제기돼 왔다.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은 지난주 “시리아 정부가 최근에 염소 가스 공격을 자행했다는 정보를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증거는 제시하지 못했다. 제이 카니 미 백악관 대변인도 “지난 12일 카프르지타 마을에서 염소 가스로 추정되는 유독성 화학물질 공격 징후가 있었다”고 말했다. 반면 러시아는 “시리아 반군들이 내전에 국제사회를 끌어들이기 위해 자작극을 벌인 것”이라며 시리아 정부 편을 들었다.

지난해 8월 시리아 다마스쿠스 외곽 지역에선 정부군의 사린 가스 공격으로 1400여명이 숨졌다. 국제사회의 분노가 들끓었고 미국과 러시아의 중재로 유엔 산하 OPCW가 시리아의 화학무기를 폐기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시리아 정부는 당초 2월말까지 자국 영토 안에서 화학무기를 모두 없애기로 한 약속을 어긴 데 이어 2차 시한인 지난 27일까지 비축물량의 92.5%만 제거해 소극적이란 비난을 사고 있다. OPCW의 시그리드 카그 조정관은 지난 주말 다마스쿠스 기자회견에서 “6월 30일까지 남아있는 화학무기와 관련 물질을 모두 없애라”고 시리아 정부를 압박했다.

이정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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