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호(서울대 교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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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이맘때쯤이면 대학가는 새 학기를 준비하는 학생들로 활기를 되찾는다.
겨우내 쓸쓸했던 「캠퍼스」가 희망과 기대로 충만하는 것이다.
여기 저기 새로운 출발을 다짐하는 학생들의 표정에서 젊음을 되살려보고 나는 새삼 대학인으로서의 긍지를 느끼게 된다. 그래서 새 학기 등록철은 어느 때보다 귀중한 시간이다.
그렇다고 등록철이 마냥 희망과 기대로 넘치는 것은 아니다.
대학가 어느 구석엔가는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음을 간과할 수가 없다. 실의와 좌절 속에서 방황하는 학생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등록금을 마련 못해 동분서주하는 학생들을 보고 있노라면 그들에게 도움을 주지 못하는 처지가 안타깝기만 하다. 배우고 싶다는 향학열보다 더 숭고한 것이 있을까. 해마다 전체의 3, 4%에 해당되는 학생들이 학업을 중단한다. 가장 큰 이유는 등록금을 마련하지 못한 탓이다.
학기마다 2, 3백명의 학생들이 성적불량으로 학사경고를 받는다. 공부를 못했다는 것이다. 이들 학사경고를 받은 학생들의 가정을 일일이 방문했던 지도교수들은 전혀 뜻밖의 사실을 발견하고 숙연해진 일이 있다.
끼니조차 제대로 잇지 못하는 가정이 대부분이었던 것이다. 그 학생은 학업보다는 당장 가족들을 먹여 살리는 것이 중요했다. 어떤 학생은 하루에도 서너군데 「아르바이트」를 해야했다.
공부를 못해서가 아니다. 치열한 입시경쟁을 뚫고 서울대학교에 들어온 수재가 공부를 못할 리가 있겠는가.
대학당국은 이처럼 딱한 학생들을 구제하기 위해 장학제도를 개선했다.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에게만 지급했던 장학금의 일부를 경제사정이 어려운 학생들에게도 돌리는 조치를 취한 것이다.
그러나 일정한 예산만으로 움직이고 있는 대학의 힘만으로는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실정이다.
또 대학만의 문제는 아니다. 오히려 사회적인 문제다. 교육문제 이상 더 중대한 사회문제가 있을까.
학생들과 비교적 광범위하게 접촉하고 있는 나는 이 문제의 해결이 그다지 어렵지 않다고 느끼고 있다.
해마다 가을이 되면 각 기업체에서 훌륭한 「사원감」을 추천해 달라고 대학에 의뢰해 온다. 그것도 요즈음에는 계절이 없어진 것 같다. 벌써부터 「우수한 인재」를 확보하기 위해 유명 기업체에서는 손을 쓰고 있으니 말이다.
그만큼 우리 경제력이 신전 되었다는 뜻이리라. 기쁜 일이다.
그런데 「우수인재」만을 빼가려는 기업들의 이기적인 태도가 대학인으로서 아쉽다고나할까. 왜 인재를 양성하는데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까.
굳이 기업의 사회적인 사명을 들출 생각은 없다. 대학에 투자를 하면 결국 혜택을 입는 장본인은 기업이라는 이치를 한번 생각해달라는 것뿐이다.

<이광호 교수 약력>
1931년 서울태생
서울대의대 및 대학원졸업
의학박사
미「캘리포니아」대학수학
서울대종합 10개년 계획 전문위원
서울대의대 교수(해부학)
현재 서울대학생처 부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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