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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자격에 밀린 유자격 간호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백의의 천사」로 불리는 간호원은 환자에겐 의사다음으로 고맙고 반가운 존재다. 눈처럼 흰「가운」을 입고 상냥한 웃음을 띄며 체온과 혈압을 「체크」하고, 맥박을 짚으며 날렵한 동작으로 주사를 놔줄 땐 누구나 모성애 같은 정을 느끼게된다. 더욱이 구질구질한 잔심부름이나 배설물을 치우는 그런 귀찮은 시중까지도 미간하나 찌푸리지 않고 해줄 땐 그 고마운 마음이란 이루 형언 할 수 없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최근에 이르러서는 이 같은 나이 어린 「나이팅게일」상은 자꾸만 스러져가고 있으니 안타까운 노릇이다. 올해 14개 대학의 간호학과는 예년과는 달리 지원자가 크게 줄었을 뿐 아니라, 정원에도 미달하는 곳조차 있었다는데 아마 그 이유도 이런 일과 전혀 무관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 같은 사태의 직접적인 원인은 서독. 미국 등에의 해외취업의 길이 최근 거의 막혀 버린데도 있긴 하나 그에 못지 않게 유자격 간호원이 무자격간호원에 밀려 취업난을 겪고 있는데 있다.
보사부가 15일 밝힌 바에 따르면 전국 유자격 간호원의 32%가 일자리를 얻지 못하고 있는 반면, 서울· 부산 등 대도시와 농어촌의 병. 의원에선 자격 없는 간호원이 전체의 무려 68%나 된다는 것이니 놀랍다.
유자격 간호원 2만6천9백4명 중 취업 간호원은 1만7천1백32명(해외취업 7천7백60명 포함)밖에 안돼 나머지 9천7백72명이 무자격 간호원 때문에 면허를 가지고서도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니 이는 확실히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 것이나 다름없다.
아닌게 아니라 요즘 일부 병원이나 의원에 가보면 흰「가운」은 입었으나 면허 있는 간호원의 표식인 흰「캡」을 쓰지 않은 간호원이 부쩍 늘어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변두리의원 등에선「캡」을 쓴 간호원의 모습을 아예 볼 수조차 없다.
말할 것도 없이 간호원이란 의사나 치과의사의 지시. 감독 하에 환자의 그 진찰치료를 돕고 각종 의료검사와 기타 의료에 관한 사무 일반에 종사하는 전문직업인 것이다.
더욱이 오늘날에 와서는 일취월장하는 의학지식, 진료기술의 향상에 따라 간호원이 맡아야할 기능은 날로 무거워져가고 있으며 또 그들의 질적 향상이 더욱 긴요하게 돼있음은 말할 나위도 없다.
그런데도 이 나라에선 무자격간호원이 도리어 유 자격 간호원을 밀어내고 있다니 이처럼 의료「서비스」의 고급화에 역행하는 사태가 어디 있겠는가.
이러함에도 일부 병. 의원에서 뱃심좋게 무자격 간호원을 선호하는 까닭은 무엇인가. 그것은 무자격 간호원을 쓰는 면이 싼 월급으로도 채용이 가능한데다 청소 등 잡역까지 시켜도 고분고분 말을 잘 듣는 이점이 있기 때문이다.
하기야 유자격 간호원 중엔 정규교육을 받았다는 「프라이드」때문인지, 걸핏하면 잘난 체 하기 쉽고, 환자에게도 군림 적인 태도를 보여서 서독 같은 외국에 진출한 유 자격 간호원까지가 병원당국이나 의사 및 동료간호원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경원시 당하는 일이 허다하다는 것이다. 이 점 깊은 반성이 있어야함은 물론이다.
그러나 단지 월급이 싸고 콧대가 높지 않다는 이유 때문에 사람의 건강을 다루는 의료행위에 무자격자를 골라 쓴다는 것은 「환자의 건강과 생명을 첫째로 생각」하는 「히포크라테스」선서의 의료정신을 정면으로 위배하는 것이 아닐 수 없다.
무자격간호원을 채용하고 있는 병· 의원 및 보건소는 하루바삐 유 자격 간호원으로 교체해야겠지만 이를 위해서는 유자격 간호원들이 먼저 자신들의 처신을 깊이 반성하여 일찍이 황보 염상섭이 『미운 간호부』에서 묘사했던, 그런 인간미 있고, 친절하며 특등실과 3등실 환자를 차별하지 않는 수양이 절실하다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계제에 보사당국은 의료보조원법의 규정대로 정규적인 양성기관을 거친 유 자격 간호원에게 취업의 길을 열어주는 방안을 다각도로 모색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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