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판소리 감상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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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세상의 소문과는 먼, 그러나「딜리탕트」(문화애호가)들의 열기에 넘친 문화행사들이 의외로 많다. 말하자면 문화의 이색지대. 음악·연극·미술·문학·영화 등 그것은 여러 분야에서 혹은 그늘에 혹은 조용히 보람들을 쌓고 있다. 그런 행사들을 찾아보는「이색문화」소묘를 시작한다. <편집자 주>
50평 남짓한 강당에 1백여 명의 관객이 자리를 잡았다.
강당 한쪽에 마련된 무대 뒤에선 명창 오정숙씨가 고수 김득수씨의 북소리에 맞춰 심청가의 중간대목을 열창하고 있다.
오정숙씨의 온갖 몸짓은 더욱 흥을 돋우었고 그럴 때마다 객석에선『얼씨구』『좋다』라는 탄성이 연거푸 터져 나왔다.
객석엔 몇 사람의 50대 관객이 섞여 있었지만 뜻밖에도 남녀대학생들이 대부분. 그들은 여느 음악감상회 못지 않은 진지한 표정으로 명창의 창에 귀를 기울였으며 이보형씨의 해설을「메모」했고 어떤 학생은 녹음기로 녹음을 하기도 했다. 『뿌리깊은 나무』가 매주(금하오 7시·서울역 앞 동자 동「뿌리 깊은 나무」강당) 마련하고 있는 판소리 감상회는 우리 나라의 유일한 판소리 공연무대다.
지난 11일로 52회를 돌파(햇수로는 3년), 최장기 판소리 공연기록을 세웠다.
이 판소리 감상회가 시작된 것은 74년 1월. 판소리학회(회장 정병욱·국문학·서울대 교수)와「브리태니커」사가 외면 당하고 사라져 가는 판소리를 보존하고 보급시키자는 뜻으로 시작했다. 판소리는 이조 영조 때부터 서민들 사이에서 불려지던 창극으로 외부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은 우리 고유한 민속 창. 그 동안 박초월·김소희·정권진·박동진씨 등 20여명의 인간문화재 또는 명창들이 출연, 춘향가·심청가·흥부가·적벽가·수궁가 등 판소리 다섯 마당을 번갈아 불렀다.
이 감상회는 처음 월 1회였으나 지난해 3월부터 주 1회로 바꿀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그 동안 동원된 관객은 대충 5천명. 대학생 층이 가장 많았고 외국인들도 심심찮게 참석한다. 어떤 때는 관객이 너무 몰려 옆방에「마이크」를 달아 감상하키도 한다.
주최측은 판소리 감상회에서 공연한 여러 명창들의 사설을 모두 책으로 기록하거나 녹음해 보존하고 있다. 이 판소리 감상회의 영향으로 서강대·연세대·이화여대 등에서 판소리 「서클」이 생기기도 했다.
11일 심청가를 부른 오정숙씨는 18일, 25일 등 네 차례에 걸쳐 8시간 걸리는 심청가를 완창할 예정. 이 감상회를 이끌어 온 정병욱 교수는『우리나라의 전통예술을 대표하는 판소리 애호가가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계속 늘어나고 있는 것이 무척 기쁘다』고 말했다.

<김준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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