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방송 50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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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이 땅에 처음으로 방송전파가 발사 된지 오는 16일로 만 50주년이 된다. 일제하인 1927년 2월 16일, 서울 정동1번지에 자리잡은 경성방송국이 호출부호 JODK, 주파수 690KHZ, 출력 1kw로 한일 양 국어 혼용방송을 시작한 것이다.
미국에 세계 최초의 방송국이 생긴지 7년, 일본의 동경방송국이 전파를 발사한지 불과 2년만의 일이었다.
당시 한반도에 보급된「라디오」수신기 대수는 겨우 1천4백여 대에 지나지 않았으며, 1일 방송시간도 6시간30분 가량으로 그나마 중간 중간에 방송이 중단되곤 했던 보잘것없는 규모였다. 게다가 한국어 방송은 2시간정도였다.
48년 8월 15일 우리 정부가 수립된 이후 이「라디오」방송은 한국 유 일의 국영방송으로 계승됐으나 그 뒤 59년, 민간방송의 허가와 더불어 사정은 크게 달라졌다. 한국의 「라디오」방송은 이때 이후 급속한 산업발전에 발맞추어 비약을 거듭, 현재는 FM방송과 더불어서 「라디오」방송에 있어서는 세계 유 수의 발전상을 보이게 되었다.
한편 56년5월 12일에는 한국 최초의 TV방송국인 KORCAD-TV국이 호출부호 HLKZ- TV, 영상출력 0.1kw, 「채널」9로 방송을 개시함으로써 한국에도 TV시대의 막이 열렸다.
이후 현존의 각「라디오」·TV 및 FM방송국들은 차례로 확장 일로를 거듭, 현재 우리 나라의 전국 방송망 및 제휴 국은 60여 개국에 이르는 놀라운 신장을 가져왔다. 1천4백여 대의「라디오」수신기로 시작된 한국의 방송이 50주년을 맞는 현재에는「라디오」수신기 대수 1천2백여 만대, TV수상기 대수는 3백50만여 대(등록대수는 76년 말 현재 2백80만9천1백3l대)에 이르러 격세지감마저 없지 않다.
이는 외국에 비해서도 경이적인 발전이며 그 동안의 한국문화발전은 어느 의미에선 이 같은 방송매체의 급신장과도 무관한 것일 수 없다. 새시대의「매스·미디어」로서, 또는 대중문화의「리더」로서의 방송이 이같이 급격한 성장을 보인 것은 우선 우리 문화의 전반적 발전과 인과관계를 가졌음을 입증해 주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같은 외형적 성장이나 50주년이란 긴 연혁을 자축하기에 앞서 우리 방송이 당면하고 있는 숱한 문제점과 극복해야 할 많은 난제 등을 다시 한번 구명해 보아야 할 것이다.
현대에 있어서 안방까지 파고든 방송「미디어」의 위력은 개인적으로는 인간의 사고기능과 인격형성에, 그리고 국가적으로는 통일된 국민의식 형성에 가히 절대적인 영향을 끼친다 해서 지나침이 없다. 방송이란 무엇보다도 국민대중으로 하여금 올바른 판단을 갖게 하고 건전한 정신적 바탕을 가진 문화국민으로서의 동질의식을 심는 주도적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한국방송은 흔히 비판되는 오락성 편향을 시정하고 문화발전의 옮은 방향을 제시하는 한편 건전하고 창조적인 국민의사 형성을 유도하는 사명에 앞장서야 하겠다.
이런 뜻에서 요즈음 들어 교양「프로」들이 날로 인기를 모아 안착하고 있음은 참으로 반가운 현상이다.
방송국 측의 이러한 노력에 발맞추어 정부 또한 종래와 같은 소극적 행정규제에만 안주할 것이 아니라 방송이 갖는 보다 적극적인 역할을 창달하는 방향으로 방송문화를 진흥시키는 거시적 안목이 절실하다.
뿐만 아니라 정부의 방송정책은 안보적 차원에서도 좀더 적극적이어야겠으며 현재의「서비스·에어리어」를 확대하기 위한 지방「네트워크」설치 및 출력강화에도 인색하지 않음으로써 난시청 문제를 해소하고 지방문화의 발전에도 기여하는 전진적 자세가 아쉽다 할 것이다.
끝으로 한국방송은 머지 않아 「칼라」TV시대를 맞이해야 할 필연성 속에 있음을 인식해야 할 것 같다.
우리의 국민소득수준으로 보아, 아직 시기상조라는 논의도 있을 수 있으나 고도산업사회·고도정보사회를 지향하는 우리나라로서「칼라」방송이 갖는 교육적·경제적·문화적 효율성을 부인 할 수는 없는 것이요, 그런 한에 있어 국·민영 방송으로 하여금, 조용한 가운데 이에 대한 대비를 가능케 하는 지원정책에 인색해서는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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