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소 인권논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돈키호테」는 약자를 돕고 장자를 꺾겠다는 큰 뜻을 품고 나귀를 타고 각국을 편력한다.
때로 그는 풍차에 덤벼들고 때로는 또 복역수들을 도주시켜 잡히기도 한다.
그는 또「돌시네아」라는 시골여자를 지체 높은 절 세의 가인으로 여기고 사모하기도 한다.
세계의 기본인권을 위해 싸우겠다는「카터」미대통령을 이런「돈키호테」와 비유한 신문이 있었다. 「돌시네아」가 바로「카터」가 지키겠다는 인권이고-.
풍차에 덤벼든「돈키호테」는 부상만 하고 혼비백산하여 도망간다. 그만큼「카터」가 맞서고 있는 적이 너무나도 강력한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우선「카터」행정부가 최근에 공격의 화살을 퍼붓고 있는 소련이 그렇다. 소련에서의 인권탄력은 어제 오늘 비롯된 것은 아니다. 그것은 공산체제 자체의 존립 양식이기도 하다. 따라서 인권탄력에 마비되어 있는 소련인 자체가 너무나도 많은 것이다.
제정 「러시아」때의 일이다. 정치적인 시를 썼다 하여 유배된「푸시킨」이 심장병을 앓게 되었다. 그는 요양을 위해 외국에 나가고 싶다고 탄원했다. 물론 허가가 나올 리가 없었다. 그 대신 당국은 어느 수로를 알선해 주었다.
이때의「푸시킨」이 겪은 시름보다 몇 십곱 더한 곤욕을「사하로프」「솔제니친」「파스테르나크」등 이 치렀다.
그 수도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지금 소련에서는 인권에 관한 한 미 국무성 쪽 공식 발언을 내정간섭이라고 응수하고 있다.
내정간섭여부를 제쳐놓는다 해도 소련의 인권탄압이 계속되는 경우에 보일 수 있는 미국 측 행동에 무엇이 있겠느냐는 데 의문이 있다. 결국「돈키호테」와 같은 무력감에 사로잡힐게 아닌가 염려되기도 한다.
더욱이 인권에 관한 한 미국 자제도 완전히 결백일 수 없다는 의견도 있다. 미국여행을 마치고「버나드·쇼」는 말하기를『자유의 여신상을 세워 놓은 미국사람들의「유머」를 당해 낼 재간이 도저히 없다』고 독설을 편 적이 있다.
그런지 반세기. 그 동안의 미국 안의 인권이며 자유가 얼마나 더 탄탄해졌을까 하고 회의적인 사람도 적지는 않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카터」자신에게 있다. 그의 이상주의며 인권에 대한 그의 열의가 진정한 것이라 하더라도 그의 길은 너무나도 험난한 것이다.
「돈키호테」는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시대를 돌이켜 보겠다는 비극적인 몸부림을 상징하고 있었다.
완전한 인권존중의 시대를 맞을 수 있다고 확신하는 사람은 지금도 드물다. 정녕「카터」는 의로운 길을 걷고 있는 것일까.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