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에 미묘한 정치기류-북은 우경화·남은 좌선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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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런던=박중희 특파원】남·북구의 정치가 좌우로 엇갈리는 방향으로 기울고있는 경향을 한 묶음으로 「전통적 지배세력의 사양」이라고 해버리는 것은 무엇보다 그것이 그들간에 하나의 공통점을 이루기 때문이다.
남구의 우익 보수정당들, 북구 여러 나라들의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은 지금 신·구 야당들의 도전 앞에 비틀거리고 있다. 이들은 제각기 오랫동안 집권세력으로서 정치적 지배체제의 기둥노릇을 해왔다는데서 서로 닮았다.
「스웨덴」과 「이탈리아」를 남·북구간의 대표적인 예로 든다면 사회민주당들은 장장 반세기동안이나 계속해 단독으로 이 북구 꼭대기의 나라를 집권당으로 지배해왔고, 지난 25년간 남구 지중해 반도 속의 정치의 주도권은 기민당의 우익정치인들 손에 쥐어져왔었다.
또 서독의 사민당, 그리고 「프랑스」의 우익 공화파까지 친다면 지금 서구의 정치적 기상변화 속에 위협을 받고있는 것은 모두가 정치적인 좌우를 불문하고 우선은 장중기에 걸쳐온 집권세력들이다.
하긴 이들이 각기 나라의 정치 지배체제의 중요한 하나를 차지해 온데 지나지 않았고, 또 모든 재야세력의 궁극목적이 집권집단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 그것만으로 요즘 변동의 의미를 전통적인 지배세력의 퇴조로 볼 건 없다.
그러나 주목할 것은 그들의 후퇴가 지금까지 이를테면 예비적인 여의 입장에서는 주축적 야당들의 상응한 전진을 반드시 약속하는 것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것은 집권을 향해 정당들이 질서 있게 경합하는 복수체제가 남구보다 짜임새 있고 선명했던 북구의 경우에서 뚜렷이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스웨덴」의 사민당 정권을 패퇴시킨 것은 보수당이었기보다는 농민당·자유당이었다. 서독에서도 최근의 선거들에서 크게 눈에 띈 진출상을 보여온 것은 보수계 주류인 기독교민주동맹(CDU)이었기보다는 과격우파인 기독교사회동맹(CSU)이었다.
「덴마크」에서도 혁신세력의 퇴조에서 오는 정치적 혜택은 전통적인 보수야당보다는 극우세력일 것으로 보고 있다. 사정은 영국에서도 마찬가지다. 노동당에 대한 일반의 환멸이나 반발이 보수당에 대한 기대를 상대적으로 높여 오진 않았다.
결국 집권세력의 퇴색은 그들과 더불어 지배체제의 지주를 이루어온 재야의 전통적인 집단들의 경우에서도 정도의 차이를 빼놓으면 비슷하게 작용해 왔다는 것이다.
한편 남구의 혁신, 또는 좌파 정당들의 경우 그들이 지금까지 정치권력의 지배적 고지를 차지해 본 경험이 없었다는 점에서 그들의 진출만을 두고 전통적 지배세력의 사양이라 해도 어폐는 없다.
이러한 현상을 빚은 원인에 대한 극히 단순한 설명을 한다면 근년에 뚜렷이 되어온 경제적 사회적 변화들이 일반, 특히 중산대중간에 갖가지 형태로 북돋워온 욕구불만들을 무마하고 충족시키는데 이들 지배세력들이 지극히 비능률적이었다는데 있었다는 것이다. 물론 북의 우선회, 남의 좌경화라는 등 지역적 특수성들이 있었고 그것은 그대로 흥미로운 분석과 관찰에 값한다.
지금까지 북구 민주사회주의 세력들이 역점을 두어온 평등복지사회화의 과정이 엉뚱한 부산물로 가져온 사회생활의 획일화, 조세부담의 과중화, 국민 각층간 책임의식의 둔화, 관료조직의 비대화 등이 경제적 불안과 겹쳐 「부르주아」등을 전통적인 지배체제 그 자체로부터 소외시켜오는 작용을 해왔다는 게 그 하나다.
거꾸로 국민생활 전면에 걸쳐 평등적 측면이 비교적 경시돼온 우파적인 남구에서 재야세력의 반발이 사회주의적 충동을 그 원동력으로 삼아왔다는 것 역시 그렇다.
서로 다른 역사적 배경으로 인한 이런 동구 밖의 지역적 특수성들에도 불구하고 또 하나 그들간 공통점이 있다면 그것은 그들 지배세력의 실력의 침식이나 권위의 동요가 소위 석유파동으로 노출돼온 경제적 불안 때문에 한층 경화돼 왔다는 것이다.
또 공통되고 근원적인 것으로서 이런 불안·불만들이 지난 오랫동안 무한한 경제적 성장과 풍요의 약속이 서구 사람들 사이에 북돋워온 장래의 낙관과 지배세력이 대표해온 사회적 지표나 가치에 대한 광범위한 합의를 좀먹게 해왔다는 것을 들어도 잘못은 아닐 것이다.
이것은 또 남북간 서구 정치의 전망이 점증하는 불안과 어쩌면 과격화까지를 시사하고 있는 것이라 해도 괜찮을는지 모른다.
[런던=박중희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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