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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 위안부발언, 일본에 쇼크 … 그래도 타협 어렵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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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28일 도쿄에서 열린 ‘동북아 국제질서와 한일관계’ 좌담회(세종연구소 주최)에 참석한 신각수 전 주일대사, 노가미 요시지 일본국제문제연구소 이사장, 진창수 세종연구소 일본센터장, 오코노기 마사오 게이오대 명예교수(왼쪽부터). 참석자들은 “경색된 한·일 관계에 돌파구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도쿄=서승욱 특파원]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25일 방한 때 “위안부는 끔찍한 인권침해”라며 과거사 문제의 성의 있는 대응을 일본에 촉구했다. 하지만 일본 정부 관계자들은 거꾸로 “미래지향적 해결을 한국에 촉구했다”고 해석한다. 한·일 관계가 얼마나 꼬여 있는지,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하지만 양국 간에 뭔가 돌파구를 만들어야 할 때라는 데 한·일 간에 의견이 일치한다. 오바마 대통령의 순방 평가와 더불어 향후 한·일 관계 전망을 양국 외교전문가 4명에게 들었다. 세종연구소 일본연구센터 주최로 28일 도쿄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이 좌담회에는 신각수 전 주일대사, 진창수 세종연구소 일본연구센터장, 노가미 요시지(野上義二·전 외무성 사무차관) 일본국제문제연구소 이사장, 오코노기 마사오(小此木政夫) 게이오대 명예교수가 참석했다.

  오코노기=오바마는 센카쿠(尖閣) 열도의 방어의무를 명확히 하면서도 중국에는 일정 부분 배려를 했다. 동북아 3국 관계를 자신들이 공정하게 조정하려는 미국의 의욕이 느껴졌다. 그런 점에서 오바마 대통령이 한국에서 위안부 발언을 한 것은 일본으로선 예상치 못했던 쇼크였다.

 신각수=오바마 대통령이 위안부 문제를 언급한 것은 한·일 간에 이 문제가 장애가 돼 있고 인권 측면에서도 중대한 사안인 만큼 일본 측에 조속한 해결을 촉구한 것이다. 그걸 전제로 해야 미래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일본은 좀 더 위안부 피해자들의 상처를 치유하려는 상징적 노력과 사죄를 해야 한다.

정부·민간 참여 ‘위안부 재단’ 만들자

 진창수=오바마 대통령 발언에다 한·일 간에 국장급 협의도 시작된 만큼 위안부 문제를 해결할 포괄적 장치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난 이 국면에서 2+2 방식을 제안하려 한다. 즉 한·일의 정부와 민간기업이 기금을 내 재단을 만들고 그곳에서 위안부 희생자들에 대해 배상도 하고 정확한 역사교육도 하면 어떨까. 양국이 이런 결단을 하지 않으면 이 문제는 영원히 계속될 수밖에 없다.

 노가미=오바마는 “우리가 과거를 돌아보기도 하지만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고도 했다. 미국의 여러 관계자를 만나보면 한국이 너무 과거에 집착한다는 것을 공통적으로 지적한다. 오바마는 또 “아베 총리도 이를 잘 인식하고 있을 것”이라고 했다. (한국에) 미래지향적으로 나아가라는 이야기다. 결국 위안부 문제를 포함한 한·일 관계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와 박근혜 대통령 단 둘이서 차분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수밖에 없다. 이 문제는 무슨 메커니즘(장치)을 만든다고 해결될 사안이 아니다.

 신각수=현실적으로 정상회담이 바로 이뤄질 분위기는 아니다. 가장 큰 문제는 상대국에 대한 국민감정이 매우 안 좋다는 것이다. 국교정상화 이후 최악이다. 이걸 어떻게든 바꿔야 한다. 그걸 위해선 관계 회복을 위한 토대를 마련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정상이 만난다 해도) 반복될 뿐이다. 특히 일본 내에선 ‘혐한’이다 ‘반한’이다 온갖 형용사를 붙이며 한국에 대한 여론을 악화시키고 있는데 이건 곤란하다. 한국은 아무리 대일 감정이 나쁘다 해도 일본을 그렇게까지 비하하지 않는다.

 오코노기=솔직히 현재 어떤 레벨에서건 타협하기 어렵다. 가장 큰 이유는 위안부 문제에서 한국이 일본에 법적 책임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위안부 관련 협상안은 민주당 정권 시절 만들어진 게 있는데, 법적 책임을 뺀 나머지 부분은 타협할 수 있다.

  노가미=이번 순방에서 집단적 자위권을 오바마 대통령이 지지한 것은 결코 미국이 일본 편을 든 게 아니다. 그동안 쭉 있어 온 이야기이고, 오히려 미·일 안보에 있어 허들(장벽)이 높다고 미국이 오래전부터 이야기해 온 것을 일본이 받아들인 것이다. 한국이 이 문제에 왜 신경을 곤두세우는지 이해할 수 없다.

 신각수=한국 국민의 우려는 일본의 ‘의도’와 관련된 부분이다. 과거사 문제와 연관돼 있기 때문이다.

 노가미=평화헌법 9조를 바꾸려 한다면 ‘의도’의 문제일 수 있지만 방위 문제를 갖고 ‘의도’가 바뀌었다고 하는 것은 비약이다.

  신각수=한국 국민이 어떤 눈으로 바라보느냐가 중요한데, 아베 정권이 과거사 문제에 대해 취하고 있는 태도가 한국인들의 시각에 영향을 미친다.

 진창수=상대에 대한 불신감 때문에 일본이 무엇을 하려 해도 비판적인 눈으로 보게 돼 있다.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해선 그 불신감을 없애려는 노력이 중요하다. 일본의 좋은 이미지, 국제적 공헌의 좋은 이미지를 보여주기 위해서도 불신감을 없애야 한다.

 노가미=미국과 유럽 등 세계의 여론조사를 보면 일본에 대한 평가는 가장 높은 수준이다. 한국과 중국 딱 두 나라만 빼고.

 신각수=그것은 전후 일본에 대한 평가이지 그 이전에 대한 평가가 아니다. 역사 문제에 대해 일본이 취하고 있는 태도는 전후 일본의 국제 공헌에 대한 평가와는 다르다. 20세기에 벌어진 일을 왜곡해 주변국에 나쁜 인식을 주는 것이 일본에 어떤 이익이 될까.

정권이 역사 수정 나서는 건 문제

 노가미=일본에 대한 평가는 일본의 과거에 대한 반성을 포함해 일본이 걸어온 실적에 대한 전체적인 평가다. 불규칙한(부적절한) 발언이 있지만 그건 어느 나라에나 있다. 전 세계에 수정주의자가 없는 나라는 없다.

 신각수=개인이나 학자 그룹으로서의 수정주의자는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정권이 실제로 그것(수정주의)에 따라 사물을 움직이려 하면 문제다.

 노가미=지금의 (아베)정권을 수정주의로 단정하면 문제 해결이 안 된다. 일본의 현 정권을 수정주의적 정권이라고 단정하고 있는 나라는 솔직히 말해 한국밖에 없다고 본다.

 진창수=아베 총리의 야스쿠니 참배 때 미국·유럽·동남아에서도 일본에 대한 비난이 나오지 않았나. 그런 것은 객관적인 현실로 인정해야 하지 않나. 한편 아베 총리는 북한과의 교섭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납치자 문제 해결의 차원이지만 한국 측에서 보면 미국 ·중국과 함께 보조를 맞춰야 한다는 의견이 강하다.

 노가미=일본으로선 북한과 개별적으로 해야만 하는 이야기가 있다. 유감스럽게도 단독으로 대응하지 않을 수 없는 부분이 있다. 하지만 일본은 국제사회보다 더한 제재를 하고 있다. 만약에 납치 문제가 해결되더라도 (일본 정부가) 단독으로 하고 있는 제재는 어떻게 (해제)할지는 몰라도 국제사회에서의 큰 틀을 일본이 넘어서려 하는 것은 아니다.

정리=김현기·서승욱 도쿄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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