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왕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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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75년의 서울시민의 1인당 소득은 32만3천6백원이었다고 한다. 한달에 2만6천6백원. 그래도 전국 평균의 1배반이다.
다른 지방과의 격차가 훨씬 줄어든 셈이다. 그러나 서울 시민의 씀씀이는 여전히 헤픈 모양이다. 한국개발원의 조사에 따르면「팁」으로 만도 1백22억원을 버렸고, 구두 닦는데 만도 11억원을 썼다.「팁」은 대개의 경우 술집에서 뿌린다. 그것도 접대부를 둔 고급술집에서의 일이다. 그렇다면 이런 곳을 단골로 출입할 수 있는 서울 남성인구가 과연 몇 이나 될까. 그러나 가령 10만명이 한 달에 한번씩만 이런 술집에 드나 들었다 해도「팁」이 60억원을 넘기는 것은 쉬운 일이다.
또 한사람이, 한달 한번만 다니는 것도 아닐 것이다. 밝혀지지 않은「팁」은 이 몇배가 더 될 것도 틀림이 없다. 이런게 천문학적 수자가 되는 것이다.「팁」을 그만큼 뿌렸다면 술값으로는 또 얼마나 나갔을까.
그러나 아직 놀라기는 이르다.
5인 가족이라고 친다면 서울의 가구 당 월수는 13만3천원. 이런 속에서 구두닦이에 11억원, 푸닥거리에 7천7백만원, 미용에 32억원, 이발에62억원…. 그러고서도 살림을 제대로 꾸려나갔다면 도리어 이상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이발값 62억원 이란 숫자도 실제와는 크게 다를 것이다.
여기엔 영업세를 물지 않는 변두리 무허가 이발소가 빠져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 이발료 8백원 짜리라 해도 1천원을 내고 나오는 사람이 적지 않은 것이다.
결국 서울시민은 그만큼 낭비성향이 크다는 얘기가 된다. 이대로만 간다면 서울시민은 모두가 파산이 된다. 다행(?)한 것은 평균소득이 32여만원이지, 모두가 그런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5백원 짜리 이발로도 비싸다 하여 무허가 이발소를 찾는 시민이 적지 않은가 하면 3천원 짜리 이발소를 1주일이 멀다하고 다니는 너그러운 시민도 있다.
이렇게 편차가 심한 탓으로 서울시는 꾸려 나가게 돼 있는지도 모른다.
수도란 어느 나라에서나 소비도시이지 생산도시일 수는 없다.
그나마 전국의 29.5%나 생산을 맡고 있다는 게 신통할 뿐이다. 「서비스」업으로 지탱되는 도시라면 있는 사람은 얼마든지 많이 쓸수록 더욱 좋다.
더우기 낭비와 사치를 가릴 줄 모르는 우리네들 사회에서는 술집에서든, 푸닥거리 집에서든 돈을 뿌리는 사람이 많아야 가난한 사람들에게 떨어지는 국물도 많아진다.
이런 게 대도시의 생리다.
그리고 씀씀이가 많다는 것은 시 당국에 바치는 세금도 그만큼 많다는 얘기가 된다.
서울의 아낙네들이 미용원에 32억원이나 버렸다는 사실은 놀랄게 아니다. 시 당국에서 거둬들일 수 있는 돈도 그만큼 늘어났다는 사실에 놀라야 한다. 그러나 이 사실은 살짝 덮여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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