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사는 세상-홍연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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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10여년전으로 기억된다 그때 나는 혼자 서독 「함부르크」에서 배를 타고「뉴요크」로 가던 길이었다. 배가 꽤 크고 깨끗해 천여명의 선객이 붐볐지만 유독 한국인은 나 혼자였다.
1주일이 걸리는 항해기간을 말벗하나 없이 지내야하는 나에겐 무척 지루한 나날이었다.
그래서 하루는 무슨 재미있는 일이 없을까 하고 배안을 이리저리 기웃거리며 돌아다니다 어디서부턴가 부드러운 화음의 합창소리가 흘러나오는 것을 들었다.·
소리를 따라 간 곳은 배한쪽에 있는 휴게실이었다. 7, 8명의 부인들이 책을 읽으면서, 뜨개질을 하면서, 개중에는 비스듬히 벽에 기대앉아 노래를 부르는 것이었다.
노래는 독일민요 있고, 부인들도 대부분 독일인 인듯 했다. 그들은 물론 전부터 서로 알던 사이도, 함께 단체여행을 하는 것도 아니었다 .제각기 모여든 사람들인데 누군가가 먼저 모두 다아는 독일민요를 노래하기 시작했고, 자연스레 모두들 따라 부르다보니 아름다운 화음을 이룬 것이었다.
독일에서는 이런 경우가 별로 진귀한 일들이 아니다. 공원을 산책하다보면 「기타」 같은 간단한 악기를 퉁기는 사람을 중심으로 유모차를 밀던 엄마와 풀밭을 뛰놀던 어린이, 청소부 아저씨, 공원을 산책하던 노인들이 반주에 맞추어 즐겁게 소리를 모아 노래를 하는 것이다.
그런 것을 볼때마다 나는 음악을 생활화하여 사랑하고 즐기는 그들의 생활에 무한한 부러움을 느꼈다. 그리고 여럿의 소리를 모아 하나의 아름다운 화음을 만드는 것에서 독일의 국민성을 절감했다.
독일국민이 얼마나 음악을 사랑하고 소중히 하는가는 2차대전후 폐허속에서 복구작업을 할때 개인주택이나 관공서건물을 짓기에 앞서 도시나 고을의 음악당부터 신축했다는 것에서도 느낄 수 있다.
「뮌헨」 에는 5, 6천명이 능히 한자리에 앉아 맥주를 마실 수 있는 거대한 술집이 있다.이는 반드시 많은 사람을 수용하여 돈을 많이 벌자는 장삿속만은 아닌것 같다. 그 술집 드넓은「홀」가운데는「밴드」가 자리잡고 앉아 끊임없이 아름다운 노래를 연주한다.
손님들은 친구들과 어울려 탁자에 둘러앉아 술을 마시기도 하고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밴드」에 맞추어 자연스레 노래를 부르기도 한다. 분위기가 무르익고 거나하게 술이 오르면 모든 손님들이「스크럼」을 짜고 몸을 흔들면서 즐거워서, 흥이 나서 합창을 하는 것이었다. 가끔 나는 합창보다는 독창, 협창회 보다는 독주회위주의 우리 음악계의 풍토에 관해 생각해 본다. 출세만을 위해, 화려한 각광을 받고 무대에서는 순간을 위해, 거의 부모등 주변의 강권에 의해 음악을 공부해온 것이 대부분 우리 음악인들의 현실이다.
어린시절부터 자연스럽게 몸에 익힌「리듬」을 즐기면서 생활하는 서독등 구미의 경우와는 판이하다. 따라서 노래도 누구나 쉽고 친근하게 부를 수 있는 우리의 민요와는 거리가 먼 요란스런「팝송」이 아니면 어려운 고전만이 주로 우리의 주위에 .범람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정말 음악이 좋아서, 음악을 사랑하여, 음악을 생활화하며 사는 사람이란 별로 많지 않은 것 같다.
우리 모두가 자연스럽게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우리의 핏속에 흐르고 있는「리듬」인 우리 민요를 다함께 목소리를 모아 합창을 하는 습관에 길들여지면 무언가 우리 현실도 달라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나 하나의 이익만을 위해 바둥거리던 현실에서 우리 모두를 생각하게 될 것이고 내 가정만이 아니라 그것을 뛰어넘어 이웃과 협조하고 단결할 수 있는 아름다운 풍토가 조성될 것같다.
따라서 새해에는 우리 국민 모두가 목소리를 하나로 모아 아름다운 화음을 이루는 합창을 많이 했으면 하고 생각한다.
낯선 사람일지라도 다만 서로 따뜻한 마음을 갖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서로 어울려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저들의 자세야말로 오늘의 메마르고 황량한 세파를 헤쳐갈 수 있는 슬기가 아닐까. 같은 민족, 같은 시민은 고사하고 이웃사이에도 문을 굳게 닫아 잠그고 사는 우리의 생활환경은 「노래하는 마음」으로부터 새로운 봄을 맞아 들여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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