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모두가 사람 대접받는 풍토」를 위한 캠페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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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성남시 단대동에서 서울 홍릉 직장까지 매일「버스」로 출퇴근하는 S연구소 연구원 조대식씨(35)는 하루 24시간 중 출퇴근 시간 2시간50분만은 자신이 인격을 박탈당한「짐짝」에 불과하다고 믿는다.
상오 7시20분. 조씨는 상오 9시인 출근시간에 대기 위해 새벽밥을 지어먹고 은행동 앞「버스」정류장으로 나간다. 2, 3대의「버스」가 찬바람만 일으키고 그대로 지나가고 기다 린지 20분만에 요행히 선「버스」는 이미 시발점에서 정원 60명의 배가 넘는 1백30여명을 태운 만원.
그냥 만원이 아니라 복어 배처럼 몸체가 튀어나올 듯 차체가 일그러진 초만원이다. 어린 학생 대 여섯명을 밀어붙이고 간신히 발만 걸친 채 안내양의 배 힘에 밀려 차안으로 들어간다.「버스」안은 숨쉬기조차 거북하다.
안내양의「올라잇」소리와 함께「버스」운전사는 이를 악물고 예의 원심력을 이용한「손님 다지기」를 시작했다.「핸들」을 일단 왼쪽으로 45도쯤 꺾었다가 갑자기 오른쪽으로 40∼50도쯤 꺾어 문간의 손님을 안으로 몰리게 한 뒤 직진하는「손님 다지기」는 네 차례나 계속됐다. 어떤 때는 5∼6번도 계속된다. 몸의 중심을 잃은 손님들은 옆 사람의 발이고 정강이고 닥치는 대로 밟고 어린 학생이나 노인들이 『에구구』비명을 질렀다. 옴쭉달싹 못하게된 조씨는 차라리 눈을 감고 『될 대로 되라』는 심사로 몸을 맡겼다. 이럴 때마다 조씨는 『유대인 학살 때의「가스」실이 연상돼 소름이 끼쳤다』고 했다.
상오 7시55분. 성남 구 종점에서「버스」가 섰다. 젖먹은 힘을 다해 남의 발위를 밟으며 간신히 빠져 나온 조씨는 차를 바꿔 타기 위해 을지로 5가 행「버스」를 기다린다.
이미 1백여명이 서있다. 때때로 질서를 지킨다고 줄을 서기도하지만「버스」가 닿았다하면 모두 허사. 한꺼번에 몰려들어 서로 먼저 타려고 기를 써「버스」문 앞에서 일대 난장판이 벌어지곤 한다.
2분전 9시. 사무실에 도착한 조씨는 어깨가 축 늘어졌다. 양복단추 2개가 떨어지고 구두는 흙투성이. 그래도 지각하지 않은 것 만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올해로 7순이 된 양점순 할머니(서울 동대문구 용두동)는「버스」를 탈 때마다 가슴이 두근거려 늙도록 자가용한대 마련 못하는 자식들에게 푸념이 대단하다.
양 할머니는 요즘도 가끔 손자·손녀들을 불러놓고 지금은 없어진 전차이야기를 하며 향수에 젖기도 한다.
영등포구 화곡동에서「버스」로 6년째 서울시내 D여고에 다니는 박모양(18·3년)은 구랍 초순 만원「버스」에서 겪은 수치심 때문에 등교하다 집으로 되돌아간 일까지 있다. 그날 따라 등교시간이 복잡해 박양은 차를 네번이나 놓쳤다. 다섯번째 차가 서자 안내양을 제쳐놓고 필사적으로 올라탔다가 책가방이 문에 걸렸다.
문을 못 닫아 화가 난 안내양이 『학생 때문에 사고난다』며 가방 손잡이를 홱 잡아 당겼다. 가방이 찢어지면서 교과서 2권과「노트」2권이 차창 밖으로 떨어졌다. 그래도 차는 그냥 달렸다.
차가 제2한강교를 급히 좌회전하자 손님들이 한쪽으로 몰려 박양은 중심을 잃고 쓰러졌다. 그 위를 구둣발이 밟았다. 차가 동교동 네거리에서 급정거를 하자 이번에는 앞으로 곤두박질, 앞사람의 옷자락을 잡는 순간 박양은 뒤에 섰던 남자손님의 몸에 꼭 안기고 말았다.
남대문 시장에서 건어물 노점상을 하는 이분례씨(45·여·서울 서대문구 녹번동)는 『모처럼 오는 공휴일이나 일요일이면 비록 물건이 잘 말리지 않더라도 차 타기가 좋아 살 것 같다』고 했다.
이씨는 휴일같이 차 타기 편한 때가 올 것 인가고 몇 년 동안 기대하곤 했지만 좀처럼 나아지는 기색이 없다며 풀이 죽었다.
Y회사에 다니는 김모양(23)은 『아침저녁「버스」타는데 시달리다 못해 출퇴근만은「택시」를 타곤 다닌다』며 이 때문에 7만원의 월급 중 30%에 가까운 2만원 가량이 교통비에 쓰인다고 했다.
회사원 김재철씨(34·서울 강남구 신사동)는 관계장관이나 시장 등 고위층이 1주일에 한번씩이나마「버스」를 타보면 해결책이 나올 것이라며 대책 없는 교통행정을 원망했다.<신종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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