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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노점상 임수남씨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따끈따끈한 군고구마·맛탕·튀김 있어요』-.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동 3가 헐려 버린 서울극장 옆 골목길에서 3년째 노점상을 하고 있는 임수남씨(37·여·영등포구 신도림동82)는 쉰 목소리로 행인들을 부르며 한 개라도 더 팔려고 목청을 돋운다.
연탄 화덕위에 고구마 굽는 통과 튀김기름을 끓이는 가마솥이 놓여있고 집게1개, 조리2개,식칼 1개가 요리도구로 갖추어져있는「리어카」1대가 임씨의 노점. 임씨 가게 옆에는 포장마차와 장난감·달력·만두 등을 파는 10여개의 노점이 즐비하다.
하루에 팔리는 고구마는 10관 정도. 하루 평균7천여원의 매상고를 올리지만 고구마 값 3천원. 튀김용 기름 2천5백원과 연탄·봉투·설탕·엿값 등 재료비를 빼고 나면 남는 것은 고작 1천∼1천5백원. 이 수입으로는 7식구의 끼니 잇기도 어렵다.
임씨가 노점상으로 나선 것은 74년 초겨울. 남편 백현수씨(40)가 영등포구청 청소과 분뇨처리직을 그만둔 뒤부터였다.
양평동 판잣집을 정리, 30만원짜리 전셋방 1개를 얻어 이사한 다음 남은 돈으로 산「리어카」를 끌고 길거리로 나서게 된 것.
『경찰의 단속에 쫓겨 숨가쁘게 지내온 한해였지요. 그러나 7식구의 생계가 여기에 달렸으니 어쩔수 없지요.』 지난 한해를 회상하는 임씨의 얼굴에는 생활의 고달픔이 역력히 떠오른다.
그러나 처녀·총각 단골 손님의 사람 됨됨이를 파악, 중매를 세쌍이나 섰단다. 또 길거리에서 종일을 보내다보니 날치기·들치기범 10여명을 붙잡아 경찰에 넘기기도 했다. 이런 일들이 임씨에게는 보람스러웠던 일.
임씨의 중매로 지난 3월 결혼, 관악구 신림동에 신혼살림을 차린 장모씨(29·S기계종업원)와 신모양(24·C전자 종업원)은 보름에 한번씩 부부동반으로 들러 군고구마를 1천여원 어치씩 사가고 있다는 것.
이밖에 임씨는 이따금 시장주변에서 발생하는 미아를 발견, 부모를 찾아주고 요기를 못한 구두닦이, 껌팔이들에게 팔다 남은 군고구마를 나눠주는 일에 기쁨을 느낀다.
임씨의 가장 큰 고역은 경찰의 일제단속. 한달에 5∼6차례 실시되는 일제 단속기간에는 하루 평균 10여회 경찰과 숨바꼭질을 해야한다.『떴다!』하는 소리를 신호로 대로변에 줄지어 있던 노점상들은 보따리를 싸들고 황급히 골목길로 달아난다. 운이 없어 걸리면 즉결에 넘겨져 3천∼5천원의 벌금을 물어야 한다.
임씨에게는 4남1녀의 교육 문제가 자나깨나 걱정거리.
국민학교 졸업반인 2남(15)만이라도 중학교 진학을 시킬 계획이나 학비를 부담할 능력이 전혀 없는 실정.
『아빠가 옛일자리를 되찾아 분뇨 차라도 끌었으면 좋겠어요. 고정 수입이 없으니 생활이 항상 불안정하지요. 새해에는 회사 청소부자리라도 얻을 수 있으면 좋겠어요.』임씨는 남편이 직장에 나가고 자신도 다른 일자리를 얻는 것이 새해에 걸어 보는 소원이라고 했다. <김원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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