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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폭소 자아내는 북극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북극해에 들어서니 어쩐지 삶의 바다가 아니라 죽음의 바다처럼 느껴질 만큼 고요했다. 여객선 「오이라파」호는 일사천리로 북극 선을 넘어서 「스피츠베르겐」제도로 향하고 있다. 북극 제는 선장·항해장·기관장을 비롯한 선원들과 모든 선객들이 모인 가운데 후갑판의「베란다·데크」에서 우렁찬 기적을 「팡파르」로 하여 시작되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텐트」천으로 만든 지름 4.5m의 큰 솔을 비롯한 단지들이 준비되었다.
맨 먼저 분장한 악대의 주악이 있은 다음 대양·호수·하천들의 수계를 다스리는 해신인 「넵륜」 부처가 「바이킹」 복장을 한 시종들을 거느리고 이 무대에 나타났다. 이 북극 제는 해신을 대리한 집행관에 의하여 진행되는데 물론 진지한 제사가 아니고 하나의 즐거운 행사이므로 웃음을 자아낸 것은 물론이다.
다음에는 익살스럽게 분장한 여러 사람이 나타났는데 이들은 온대에서 신성한 북극권으로 들어가려는 인물들이다. 해신의 시종들은 이 들이 과연 통과할 수 있는 자격이 있는지 없는지를 밝히기 위하여 하나 하나 시험 단에 올려놓고 여기 오기 전까지의 과거가 속속들이 기록된 장부를 들춰 보는가하면 큰 돋보기로 용모가 단정한가를 살피고 마음속이며 뱃속을 들여다보는 흉내를 낸다. 죄가 있다고 생각된 사람에 대해서는 정화하기 위하여 준비된 단지들 속에서 「을리브」를 비롯한 「샐러드」며 생선들을 꺼내어 이들의 입에 억지로 쳐 넣기도 하고 웃옷을 들치고 어깨에서 쏟아 넣기도 한다
그런가하면 「수프」를 머리에 붓고 「스파게티」를 얼굴에다 철썩 붙이기도 한다. 이런 음식세례를 받는 사람은 달아나려고 하지만 해신의 시종들이 양쪽에서 꼭 붙들고 있어서 꼼짝못하고 이런 일을 당해야 한다.
이 같이 연극을 끝내면 이번에는 무대인물이 아닌 실체의 선장·항해장·기관장들이 서열에 따라 점잖게 세례 받는다. 다음엔 선객 중에서 용모가 빼어난 여자며 남자가 이 무대에 나타나며 어린이들도 한목 낀다. 그리고 희망하는 사람은 누구나 이런 음식 세례 받을 수 있어서 구경만 하고있던 선객들이 이 무대에 잇달아 등장한다. 그러면「수프」를 실제로 이 선객들의 머리 위에 붓는가 하면 「스파게티」를 얼굴에 철썩 붙인다.
익살을 즐기는 여자나 남자들은 옷이 엉망이 되는 것도 아랑곳없이 좋다고 날뛴다. 쾌락을 즐기는「유럽」 사람다운 기질이다.
이런 익살을 피운 뒤에는 선객들을 죄인처럼 그 큰 물솥 앞에 끊어 앉혀 놓고 해신의 시종들이 큰 장부를 펴고 무슨 흥정을 한다. 즉 선객에게 당신은 오늘 저녁 북극제의 성찬을 위하여 맥주며 「위스키」 들을 몇 상자 희사하겠는가를 묻고 만족할만하면 놓아주지만 인색하게 안내겠다고 하고 조금밖에 못 내겠다고 하면 해신의 시종들이 선객을 냉큼 들어 옷 입은 채로 이 큰 물솥 속에다 펑덩 던져 넣는다. 이것은 완전히 선례를 시키기 위한 방법이다.
그런데 이 물솥에 김이 많이 나는 것은 물이 뜨거워서가 아니고 여름이지만 북극해는 초겨울처럼 쌀쌀해서 사람의 체온 정도로 데웠기 때문에 그같이 김이 나는 것이다.
이 같이 물솥에 선객들을 집어넣는 것을 「클라이맥스」로 하여 이 북극 제를 끝냈는데 약70분이 걸렸다.
동양인이라고는 필자 한사람뿐인데 해신 아닌 용왕의 심판으로 죄가 없다고 무사히 통과시켜주어서 다행히 북극권에 들어가게 되었다.
지금까지 여러 차례의, 세계여행을 하면서 적도제며 일부변경선제들을 보았으나 이 북극 제는 처음이다.
남극제도 아마 이같이 익살 있게 하리라고 보는데 이 북극 제는 매우 익살스러워서 모든 선객들은 허리가 끊어지도록 폭소를 터뜨리고 있었다.
옛날에는 항해의 안전을 빌기 위하여 엄숙하게 하던 것이 이 같이 재미있는 「쇼」로 바뀌었다는 것은 인간이 얼마나 즐거움을 쫓는가를 말해주는 것이 아닐까.
필자는 기어이『그대는 여러 시험에 통과했으므로 세례를 주며 해마란 이름을 주노라』고 해신과 선장의 「사인」이 든 북극 제 통과증을 받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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