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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9·11 PTSD 환자 지금도 치료 중 … 1대1 찾아가는 상담, 생활까지 지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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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2003년 대구 지하철 화재사고 현장에서 살아나온 한 고등학생. 그는 여전히 지하철을 자유롭게 타지 못한다. 사고 후 아버지가 무심코 ‘지하철을 타고 오너라’라고 말했을 때 그는 아버지의 뺨을 때렸다. 곧바로 아버지께 용서를 구했지만 사고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자신이 한없이 미웠다.”

 대구 지하철 사고 생존자들을 면접조사한 결과를 담은 논문 ‘트라우마 생존자의 정보처리’ 중 일부다.

 논문에 따르면 사고 생존자 상당수는 사고 6개월이 지난 후 ‘왜 살아왔나’ ‘차라리 죽을 걸 그랬다’는 등의 우울한 기분과 무기력증을 경험했다. 이 논문을 쓴 유정 한국사회과학자료원 연구원은 “사건 발생 6개월~2년 사이에 만난 생존자들은 그때 겪은 사고와 똑같은 일이 다시 일어날 것 같은 느낌으로 살고 있었다. 극도의 불안감 때문에 가족이나 친구들조차 감당하기 힘든 성격으로 변한 사례도 있다”고 전했다.

 사고 당시를 떠올리고 싶지 않은 생존자들은 당시를 잘 기억해내지 못할 뿐 아니라 말로 표현하는 데도 서툴렀다. 하나의 장면, 소리, 냄새 등으로 조각난 기억만 반복해 말할 뿐 자신이 무엇을 보고 뭘 했는지 완성된 이야기로 엮어내지 못했다. 고통스러운 기억을 되살리고 싶지 않은 마음이 불러온 ‘정신력의 마비’ 때문이다.

 심각한 기억력과 집중력 저하는 트라우마의 주요 증상이다. 생존 학생들은 수업시간에 집중하지 못해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고, 시험처럼 집중력을 요하는 일은 중간에 포기하기 일쑤였다. 직장인들은 업무 내용을 잊어버리는 일이 흔했다.

 또 이들은 일상생활의 곳곳에서 사고를 떠올리며 사고 당시의 고통을 다시 겪었다. 언제 어디서 그 경험을 하게 될지 모르기 때문에 과도한 불안감과 경계심을 안고 살아갔다. 극장에서 영화를 보고 나오다가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는 생존자도 있었다. 어두운 지하도에서 ‘비상구’라고 쓰여 있는 불빛을 따라 탈출하던 기억을 떠올린 것이다.

 세월호 사망자들의 장례식이 이어지고, 단원고 학생들이 학교로 돌아가기 시작하면서 앞으로 이들이 겪어야 할 심리적 아픔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다. 진도 실내체육관에는 유족들을 상대로 한 심리치료 상담사들이 배치됐고, 학교에 복귀한 학생들은 전문의와 상담사들의 지원을 받았다. 보건복지부는 앞으로 3년 동안 이들의 심리적 외상 치료를 지원하겠다고 발표했다.

 정부가 재해재난 사고 피해자들의 심리 지원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채정호(강남성모병원 정신의학과 교수) 한국외상성스트레스연구회장은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응급의료법에 심리치료나 정신치료가 포함되지 않는다. 2003년 대구 지하철 사고 당시 심리치료 지원을 강화하려는 움직임이 있다가 무산됐다”고 말했다.

 심리적 외상의 대표적인 증상은 ▶고통스러운 경험을 자꾸 떠올리거나 ▶문제가 된 사건을 계속 회피하려고 하거나 ▶잠을 잘 자지 못하고 화를 참지 못하는 것 등이 있다. 이는 인간의 적응능력을 압도하는 사건에 직면해 정상적인 상황에서 작동하는 반응체계가 무너졌을 때 발생하는 정상적인 반응이다.

 사건 발생 1개월 이내에 나타나는 이런 증상을 급성스트레스라고 한다. 하지만 이런 증상이 3개월 이후에도 지속될 경우 만성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로 발전할 가능성이 커진다. 사고 직후부터 적절한 심리적 치료가 이뤄질 경우 PTSD로 발전하는 비율을 줄일 수 있다. 하규섭 국립서울병원장은 “생존자나 유가족의 10~20% 정도가 PTSD를 겪는 것으로 추정된다”며 “이들을 3~6개월 정도 치료하면 PTSD 환자가 3분의 1로 줄어들고, 다시 6개월 정도 치료하면 3분의 1로 줄어 3년이 지나면 1~5% 정도 된다”고 말했다.

 한때 트라우마는 소심하거나 용기가 없는 사람들의 특징으로 생각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적극적이고 쾌활했던 이가 사고 이후 트라우마로 소심하고 무기력한 성격으로 바뀌거나 외부와 고립된 채 살아가는 등 트라우마는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마음의 상처다.

 친절하고 추진력 있는 청년이었던 미국인 이츠코아틀 오캄포는 2006년 이라크전에 참전했다가 2010년 군에서 전역한 뒤 술과 컴퓨터 게임에 묻혀 지내다가 결국 4건의 연쇄살인을 저지르고 현장에서 잡혔다. 그의 가족들은 이츠코아틀이 이라크에서 돌아온 뒤 환청과 환각, 두통 등에 시달렸다고 전했다. 미래를 비관적으로 생각하고 계획을 세우지 못하는 것은 트라우마 증상 중 하나다.

 2011년 발생한 동일본 대지진의 생존자들은 사고 1개월 후부터 밤이면 “도와줘, 도와줘”라고 외치면서 떠내려가던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리거나 얼굴이 떠오르고 죽은 가족들의 몸에서 느꼈던 차가운 감각을 다시 느끼는 ‘플래시백(flash back)’을 겪었다.

 1989년 베트남전 참전 군인들을 위해 국립 PTSD센터를 설립했던 미국은 2001년 9·11 테러 이후 트라우마 치료에 더욱 큰 관심을 갖고 지원을 시작했다.

 9·11 테러 당시 미국 뉴욕은 공포의 도가니였다. 미국 경제의 상징인 110층짜리 세계무역센터(WTC) 쌍둥이 빌딩이 무너지고 수천 명의 사상자가 났다. 외신에 따르면 9·11 테러 발생 직후 조사 결과 미국 맨해튼 주민 10명 중 1명꼴로 악몽과 불면, 불안과 분노를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사고 지역 인근 주민들의 경우 이 비율이 5명 중 1명꼴로 높았다.

 뉴욕시는 9·11 테러 발생 이후 피해자뿐 아니라 목격자들도 정신과 치료를 무료로 받을 수 있는 병원 리스트를 안내했다. 이런 노력은 사건 발생 10년이 지난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2011년 월드트레이드센터헬스프로그램(WTCHP)을 운영하기 시작했으며 2013년 현재 9·11 테러와 관련해 PTSD, 당뇨, 천식 등의 질환을 앓고 있는 7만1000명을 지원 중이다.

 미국 연방정부는 9·11 테러 이후 사회 각 분야 전문가들로 구성된 위원회를 설치하고 피해자들에 대한 다각도의 지원 방안을 마련하고 실행했다. 사고 10년 후까지 피해자들을 관찰·조사해 보고서를 만들었고, 이를 기반으로 관련 법안을 만들어 지원하고 있다. 트라우마 피해자들이 사고 이전처럼 직장생활을 유지할 수 없다는 점을 감안해 직업교육을 하거나, 당뇨나 심장병 등 관련 질병의 치료까지 지원하는 등 단순한 심리 상담이 아닌 생활 전반에 대한 지원을 한다. 2009년에는 ‘긴급 상황이나 재난 대응 요원들을 위한 심리적 응급조치 현장 시행 안내서’를 개발하기도 했다. 최남희 서울여자간호대 교수는 “상담센터를 만들어 오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피해자들을 일대일로 찾아가 어려운 점을 듣고 그들이 진짜로 필요한 지원을 해주는 것이 미국의 트라우마 지원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PTSD 환자들에게 치료라는 말 대신 지원이나 상담 등의 말을 쓰도록 하는 것도 미국 연방정부의 권고 사항이다. 최 교수는 “치료라는 말을 쓸 경우 자신의 증세를 심각하게 생각해 호전이 더 지연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동일본 대지진 ‘와세다 리포트’

2011년 3월 발생한 동일본 대지진으로 가족을 잃은 청소년들의 심리적 외상을 치료해 온 임상심리학자 혼다 게이코가 쓴 『와세다 리포트-피해 지역 아이들의 마음에 다가가기』(고려대 ‘포스트 3·11과 인간 연구팀’ 펴냄)에 따르면 청소년들은 심리적 스트레스를 받을 경우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는 생각에 괴로워하며 죄의식에 시달리거나, 겁쟁이로 낙인찍힐까 봐 두려워한다. 갑자기 떠들어대기도 하고, 충동적이거나 자기파괴적인 행동을 하기도 한다. 마음의 상처가 치유될 때까지 아이들은 대부분 6단계 과정을 거치는데 충격 →부인→ 분노 → 침울 → 재생을 위한 모색 → 새로운 생활에 적응의 순서를 보인다. 6~9개월이 지났을 때 아이들은 침울 단계에 돌입하는데 이때 평소처럼 대하면서 ‘ 너는 혼자가 아니야’라는 메시지를 보내야 한다. 이들이 일상에 적응하기까지의 시간은 적어도 1년이 걸리는 것으로 조사됐다.

박혜민·김민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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