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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년 전 서해훼리호 때나 지금이나 빤히 보면서 허둥대는 건 똑같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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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21년 전이나 지금이나 뭐가 달라진 게 있습니까. 사람 죽는 것 빤히 보면서 허둥대는 모습은 똑같잖아요.”

 배점모(61·사진) 호원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최근 신문 기사를 보면 울분을 감추지 못한다. 그는 19년 전 고려대에서 ‘해운조직에 있어서 정책불응의 원인에 관한 연구: 여객선 사고의 사례를 중심으로’라는 제목으로 행정학 박사학위 논문을 발표했다.

1993년 10월 서해훼리호 침몰 사고, 94년 10월 충주호 유람선 화재 사고가 잇따르자 행정학 관점에서 고질적인 여객선 사고 문제를 분석해보기로 했다. 배 교수는 “관할 정부의 정책이 선박 회사에 어떻게 전달되고, 둘 사이에 있는 해운조합은 어떤 역할을 하는지 파악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전북대 행정학과를 졸업한 배 교수는 고려대에서 행정학 박사를 받았다.

 배 교수는 84~93년 10년 간 발생했던 여객선 사고 재판 결과문인 재결서 138건을 모두 찾아냈다. 전산기록도 없어 국가기록원까지 찾아 필름 형태로 저장돼 있는 사건 기록을 샅샅이 뒤져야 했다. 그는 “지방에 거주해 서울에 올라갈 기회가 많지 않아 자료 수집에만 1년 이상 걸렸다”고 말했다.

 그는 여객선 사고 138건에 대한 사고 원인을 정부 정책을 지키지 않은 ‘불응요인’ 11가지와 이와 무관한 ‘불응 무관요인’ 12가지 등 모두 23가지로 분류해 분석했다.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한 원인은 불응 무관요인 중 ‘조선기술 졸렬’(13.22%)이었다. 배 교수는 “배는 정면에서 봤을 때 V자형이어야 하는데 서해훼리호는 U자형으로 돼 있어 좌우 흔들림에 취약했다”고 말했다.

 둘째로 큰 원인은 불응요인 중 ‘선체 기관의 구조·재질 등의 안전성 결함’(10.74%)이었다. 승무원들이 관련 규정을 제대로 지키지 않아 안전성에 문제가 생겼다는 점에서 배 교수가 가장 주목하는 부분이다. 서해훼리호가 침몰한 10월 10일은 일요일이었다. 낚시하기 가장 좋은 시기라 최대 승선인원인 221명보다 141명이나 많은 인원에 배에 탔다. 새우젓 등 화물도 몰려 한계 중량을 6.5t가량 초과했다. 배 교수는 “출항 여건이 안 되는 데도 다음 날 육지로 출근해야 할 사람들이 무조건 ‘내가 책임지겠다’고 우기면 어쩔 수 없이 출발하는 관행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세월호 안전점검 시간도 고작 13분”이라며 “그렇게 큰 배를 점검하면서도 서류만 훑는 관행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환경은 선박회사의 재정 문제와도 직결돼 있다. 평상시 승객들이 적을 때는 선박회사들이 적자가 날 수밖에 없는데 정부 보조금도 없는 상황에서 명절 때와 같이 호황기를 맞으면 이를 메우려 과적과 승선인원 초과를 한다는 것이다. 그는 “기상 여건이 좋지 않더라도 출항을 못하면 회사에 손해가 나니까 선장도 억지로 출발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사고 직후 지금 별 대책 세워봐야 효과가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사고 대책 매뉴얼은 21년 전에도 있었다. 새로운 정책보다 점검 시스템 확립이 더욱 절실하다”는 지적이다.

김민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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