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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절망 바이러스 퇴치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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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이훈범
이훈범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프리츠커상은 건축계의 노벨상으로 불린다. 그만큼 최고 권위다. 그 수상자들이 재미있다. 특히 올해와 지난해가 그렇다. 둘 다 일본인이다. 국적보다 중요한 공통점이 있다.

 지난해 수상자 이토 도요는 센다이 미디어센터로 유명하다. 철과 유리로만 됐는데 동일본 대지진에도 끄떡없었다. 지난해에는 지진 피해자 쉼터인 ‘모두의 집’을 지었다. 지진과 쓰나미로 쓰러진 소나무처럼 현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를 썼다.

 올해 수상자 반 시게루는 별명이 ‘종이 건축가’다. 단단하게 압착해 방수 처리한 종이 파이프가 주 건축재료다. 1994년 르완다 인종대학살 때 그걸로 난민수용소를 지었다. 이후 20년 동안 세계 곳곳의 재난지역을 찾아 다니며 수용시설을 만들었다.

 난민에 관심을 갖는 건축가의 2년 연속 프리츠커상 수상엔 분명 함의가 있다. 건축이 사회적 책임에 눈을 돌리고 있다는 얘기다. 자연재해는 말할 것도 없고 대형사고와 테러, 게다가 금융위기까지, 고통 받는 현대인들을 건축이 어떻게 위로할 수 있느냐를 고민하는 것이다.

 지친 마음을 달래주는 데 꼭 필요한 건 자존심이다. 자선이 적선이 돼선 상처를 더할 뿐이다. 두 건축가가 생각한 게 그거였다. 인간의 존엄성을 지켜주는 위로 말이다. ‘모두의 집’은 크기는 작아도 테라스까지 갖춘 안락한 주거다. 값싼 종이로 지어도 난민들이 최소한의 품위를 유지하는 데 중점을 뒀다.

 이런 아이디어가 가장 절실한 곳이 진도 체육관이었다. 남과 어깨가 닿을 만한 좁은 공간에 스티로폼 한 장, 이불 하나에 의지하고 있는 희생자 가족들이다. 차가운 물 속의 자식을 생각하면 그것도 사치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처럼 불안한 심리상태일수록 더욱 따뜻하게 보듬어야 한다.

 반 시게루는 이재민을 수용한 체육관에 칸막이를 설치했다. 종이 파이프와 커튼으로 격자 모양의 가족 단위 공간을 만들었다. 95년 고베 대지진 때 이미 그랬다. 좁지만 섬세한 공간 속에서 이재민들은 사회의 속 깊은 배려를 느꼈을 터다. 움트는 재기의 희망을 만졌으리라.

 진도 체육관에서도 칸막이 요청이 있었는데 흐지부지됐다는 얘기가 들린다. 안타까운 현실이다. 사고를 막을 수 없었다면 치유는 이런 데서부터 해야 한다. 절망의 2차 감염부터 막아야 한다는 얘기다. 성의와 배려라는 백신이 빠진 자리에 절망 바이러스가 번식한다. 이미 많은 국민이 그것에 노출돼 있다.

이훈범 국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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