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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백66만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우리 나라 대학졸업생 한 사람의 양육원가는 7백66만5천원 이라는 계산이 나왔다. 어느 호사가의 집계가 아니라 경제기획원의 공식 산출이다.
그 구성비를 보면 교육비가 52%로 가장 많은 몫을 차지한다. 잡비가 25.6%, 식비가 22.4%.
그러나 이 비용의 산출기준은 모호한 점이 없지 않다. 지금의 근로자 가계비를 근거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적어도 4반세기나 되는 25년 동안의 시간적인 간격과 환경에 대한 고려가 없다.
따라서 실제의 양육비는 7백66만원보다는 엄청난 차이를 보여 줄 것 같다. 공공요금의 인상과 물가 상승률에 대한 비중도 결코 적지는 않을 것이다. 10년 전의 물가와 오늘의 물가는 그 감각이 다르다. 10년 후는 더구나 예측의 한계 속에 있지도 않다.
그러나 새삼 실감하는 것은 한사람이 성년이 되어 사회에 제 일보를 내디디기까지의 비용이 얼마나 엄청난가 하는 사실이다. 「천만원의 비용」은 서민의 감각으로는 다만 추상적인 숫자일 뿐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는 해마다 적어도 4만명의 대학졸업자가 배출되고 있다.
양육비의 구성비 중 교육비가 차지하는 몫은 52%로 절반 이상이다. 공립학교의 교육이 우리에게 얼마나 절실한 과제인가를 알 수 있다. 국민교가 의무교육이라지만 우리의 실제가계에서는 엄연히 상당한 비용이 지출되고 있다. 상급학교일수록 그 몫은 더욱 늘어만 간다. 대학교육에 이르러서는 공립에만 의존하기는 더욱 더 어렵다. 교육비는 늘어날 수밖에 없다.
미국의 경우 주립대학은 연간 학비가 겨우 30「달러」밖에 안 되는 곳도 있다. 대학교육의 질적인 한계가 없지는 않지만, 그러나 그것은 대학생 자신의 문제다. 30「달러」짜리 대학에서도 얼마든지 훌륭한 교육을 받고 사회에 진출할 수 있는 것이다.
또 7백66만원의 양육비는 인명경시풍조에도 찬물을 끼얹어준다. 이것은 사람의 값을 다만 대졸자를 기준으로 산술적인 계산을 한 것에 불과하지만, 사고사의 경우 겨우 2백만원 정도를 보상하는 사회 통념에는 일대 경종을 울려준다. 25세 미만의 경우에는 적어도 7백66만원이 하나의 도덕적 기준은 되어야 할 것 같다. 그나마 정신적 위로의 보상은 여기에 포함되지도 않았다.
그러나 사람은 모든 값을 초월하는 존재다. 그 때문에 『사람된 값을 하라』는 충고처럼 무서운 것은 없다. 사람이 세상에 나서 사람된 값을 하는 것은 산술적인 비용의 부채를 갚는 것으로 그치지는 않는다. 언제나 생의 의미와 보람을 생각하는 것만큼 좋은 생활의 계율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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