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논쟁

선행학습 금지되면 일반고 위기 맞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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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일러스트=강일구]

논쟁의 초점

선행학습금지법(공교육 정상화 촉진 및 선행교육 규제에 관한 특별법)이 오는 2학기에 시행되면 모든 초·중·고교는 학교 교육과정 진도계획에 따라 미리 정해진 범위와 수준을 지켜 학생들을 가르쳐야 한다. 학교가 이 계획보다 앞질러 가르치면 재정지원금을 삭감 당하거나 심할 경우 정원 감축이란 불이익도 겪을 수 있다. 이는 선행학습에서 비롯된 학생들의 사교육비 부담이 갈수록 커지는 데 따른 정부의 조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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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전체 고교생의 72%가 다니는 일반계 고교가 선행학습 금지로 인해 위기를 겪을지 모른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자율형사립고(자사고)나 외고·과학고 등 특수목적고(특목고)는 교육과정을 자율적으로 편성할 수 있어 선행학습 금지라는 규제는 정작 일반계 고교의 발목만 잡게 될 것이라는 게 일반계 고교 교사들의 주장이다. 이에 비해 자사고나 특목고 등이 입시 과목을 앞당겨 가르친다면 교육부가 자사고나 특목고 지정을 취소하는 등 강력히 조치할 것이므로 일반고만 불리할 게 없으며, 위기론은 과장됐다는 반론도 있다.

 김혜남 문일고 교사와 윤유진 성균관대 사교육정책중점연구소 연구교수에게서 찬성과 반대, 두 갈래의 목소리를 들어본다.

일반고 위기 심화된다

김혜남
문일고 교사

좋은 취지와 목표가 있는 교육정책이라 하더라도 현장성이 뒷받침되지 못하면 그 정책은 성공하기 어렵다. 옆 친구보다 높은 점수를 얻어야 좋은 대학 진학이 가능한 상대평가 체제에서 학업부담 감소와 사교육비 경감 취지를 담은 정책은 학생이나 학부모의 공감을 얻기 쉽지 않다. 물론 사교육비 부담 등 교육적 폐해가 큰 선행학습을 법으로 규제할 필요는 있다. 이런 좋은 명분에도 불구하고 대입을 정점으로 하는 입시경쟁의 상황에서 선행학습 금지가 막상 2학기에 시행된다면 학생·학부모는 이에 어떻게 반응할지, 학교와 교사는 무슨 준비를 해야 할지 의문과 고민이 교차한다.

 전 정부가 도입했던 수준별 수능영어도 많은 학생에게 고통만 주고 환원됐고, 수능영어를 대체한다는 NEAT(영어능력평가시험)도 폐기된 것을 귀감으로 삼지 않을 수 없다. 단지 정책실패에 대한 책임을 표명하는 사람이 없어 실험 대상이 된 학생들에게 송구스러운 마음뿐이다.

 특목고와 자사고에 비해 일반고는 교육과정을 자율적으로 운영하기 힘들다. 특목고와 자사고는 선행학습금지법이 시행되더라도 교육과정을 자유롭게 운영할 수 있어 2학년까지 3학년 과정을 모두 가르칠 수 있다. 하지만 일반고는 교육과정을 넘어서는 것이 금지되기에 3학년 때 수능 문제풀이 수업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런 지적이 나오자 교육부는 3학년만 1학기에 2학기 수업을 허용키로 했다. 이것이야말로 교육현장에서 편법과 불법을 허용하는 대증요법 식의 교육정책이라는 걸 보여준다. 특목고는 허용하고 일반고는 허용하지 않는 식의 대책은 사회의 불공정한 구조를 드러내며, 위화감을 키우는 잠재적인 갈등의 요소가 될 수 있다.

 열악한 상황에서 일반고는 공교육의 경쟁력을 높이려고 교육역량을 집중하려 애쓴다. 방과후에도 심화반 수업으로 성취도가 높은 학생들의 학습 욕구를 충족시켜 학교의 경쟁력을 높이고, 지역사회에서 진학 실적을 인정받으며 공교육의 경쟁력 강화라는 목표에 도달하려 전력한다.

 선행학습금지법이 시행되면 이런 일반고의 모습은 달라질 것이다. 우수한 학생은 입시 대비에 적합한 수업을 받을 기회를 빼앗기며, 중·하위권도 3학년 2학기 수업을 1학기에 몰아서 하는 과정에서 부담만 늘고 효과는 보지 못할 것이다.

 학교에서 심화반 수업으로 성취도를 높이던 학생들이 여유 있게 수능준비를 하지 못한다면 공교육에 등을 돌릴 것이고, 선행학습이 자유로운 사교육으로 향하게 될 것이다. 공교육에서 만족스러운 입시 준비가 안 되니 사교육에서 그 욕구를 충족하려는 건 어찌 보면 명약관화하다. 공교육엔 족쇄를 채우면서 사교육에 대한 규제와 대책이 빠져 있는 이유를 모르겠다.

 안타까운 건 가정 사정이 사교육을 받을 정도로 풍족하지 않지만 학업수준이 우수한 아이들이 수준에 맞는 수업을 받기 힘든 사각지대로 내몰린다는 점이다. 가정 형편이 어려운 우수한 학생들을 학업향상 프로그램으로 3년 동안 잘 교육시켜 우수한 대학에 보내곤 한다. 하지만 금지법이 시행되면 이런 학생들은 학교의 방과후 수업 등을 통해 효과적으로 수능을 준비하기 힘들어진다.

 학교생활을 충실하게 했는지 여부를 알려주는 지표인 내신 성적 위주로 전형하는 게 학생부 교과전형이다. 이 전형은 일반고가 타 유형의 학교를 앞설 수 있는 거의 유일한 희망이다. 그런데 학교 시험이 쉽게 출제돼 내신에서 변별력이 떨어지면 동점자가 양산돼 내신에서 1등급을 받는 사람이 없어지는 블랭크 현상도 생길 수 있다. 이처럼 내신에서 변별력이 떨어진다면 일반고는 유리할 게 없어진다.

 헌법에도 능력에 따라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권리를 명문화하고 있다. 이를 법으로 배제하는 것은 학습권에 대한 중대한 침해다. 선행학습금지법이 공교육의 붕괴를 막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공교육의 질이 저하되고 불신을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를 직시해야 한다.

김혜남 문일고 교사

일반고라고 불리할 건 없다

윤유진
성균관대
사교육정책중점연구소
연구교수

교육부가 ‘공교육 정상화 촉진 및 선행교육 규제에 관한 특별법’ 시행령을 입법예고하면서 여론이 뜨겁다. 선행교육 규제법이 과연 사교육을 줄이는 데 실효성이 있겠는가에 대한 논란이다. 특히 선행교육 규제법이 시행되면 일반계 고교가 혼란에 빠질 것이라고 우려한다. 특목고나 자사고에 비해 일반고 학생들이 입시에서 불리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시행령을 살펴보면 딱히 그렇지도 않다. 선행교육과 선행학습을 유발하는 평가 금지조항은 일반고, 특목고, 자사고 모두에 적용되고 있다. 더구나 특목고나 자사고는 의무적으로 매년 선행학습영향평가를 실시해야 한다. 또한 교육과정을 부당하게 운영하거나 설립 목적에 맞지 않게 학교를 운영할 때 교육감은 언제든 특목고나 자사고의 지정을 취소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또한 자사고의 경우 2014년부터 입시 교과 위주로 교육과정을 편성하지 못하도록 강력한 지도감독을 받게 될 것이다.

 오히려 해결되어야 하는 문제는 일반고나 특목고·사립고 모두에 있다. 이들 고교 교과 운영에서 선행교육이 이미 관행화돼 있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사교육이 촉발되는 등 학생과 학부모의 고통은 간과할 수 없는 상황이다. 2012년 통계청 조사를 보면 영어 사교육 참여율이 44%인 데 비해 수학은 45.8%로 교과 중 최고로 높다. 일반고 학생들의 주당 수학 사교육 시간도 5.3시간으로 영어 4.6시간보다 길다.

 사교육을 부추기는 몇 가지 사안을 짚어보자. 우선 현재 수능시험의 범위는 3학년 말까지 진도를 가정하고 있다. 수능 시기를 고려하지 않고 학습 분량과 속도를 정한 것이 근본적인 문제다. 선행교육 규제법 시행과 아울러 수능 출제 범위가 조정되어야 마땅하며, 이에 대해 교육부도 3학년 교육과정 운영에 대해 학교에 자율권을 준다고 시행령에 밝히고 있다.

 또한 일반고를 포함해 대부분 고교가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행태는 사교육을 더욱 부채질하고 있다. 수학교사들은 2학년 때 배우는 2권의 수학Ⅰ과 3학년 때 배우는 2권의 수학Ⅱ 등 총 4권을 2학년 1년 동안 모두 끝내야 한다는 부담을 안고 있다. 특히 사립학교들은 더욱 그렇다. 3년의 과정을 2년에 모두 끝내고 3학년 때는 반복해서 문제풀이를 시키는 것이 입시에 유리하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학교만 믿고 선행학습을 하지 않은 아이들은 이 엄청난 진도를 도저히 따라갈 수 없다. 많은 학생이 수학을 포기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현재 A형과 B형으로 되어 있는 대학입학시험 체계에도 문제가 있다. A형을 선택하는 것이 가산점을 주는 B형보다 실제적으로 유리하다고 교사들은 말한다. 이과 학생들이 진학하게 되는 이공계 학과에서는 B형 수학 교육과정이 필수적임에도 불구하고 점수 올리기에 유리하다는 이유로 대부분 A형 시험을 치르고 있다. 그러니 학교 수업 역시 정상적으로 운영될 리 만무하다.

 이렇게 과도한 공교육 파행과 선행학습으로 인한 학습 부담은 당연히 사교육을 부추기고 있다. 일반고만 그런 게 아니다. 사교육정책중점연구소는 초·중·고 학생의 약 70% 이상이 영어·수학 교과에서 사교육 선행학습을 받은 적이 있으며, 약 25%의 학생들은 공교육 선행학습 경험이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선행교육 규제법의 성공은 학부모들의 의식 변화를 전제로 한다. 내 아이만 성공하면 그만이라는 생각은 아이를 불행하게 할 뿐 아니라 공교육도 역시 정상화되기 어렵다. 지나친 선행학습으로 인한 경쟁의식과 불안감, 자율의 구속 등은 감수성이 예민한 시기의 학생들에게 상처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유엔 아동권리위원회도 한국의 지나친 입시교육이 아동과 청소년의 인권을 침해하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선행교육 규제법 실시와 더불어 수학 교과의 학습량을 줄이고 시험의 난도를 낮추는 작업도 병행해야 한다. 어렵게 마련된 선행교육 규제법이 사교육 경감의 단초를 제공하게 되기를 바란다.

윤유진 성균관대 사교육정책중점연구소 연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