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신춘문예 비결 10장|조해일<작가·70년 신춘「중앙문예」소설당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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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신춘문예」행사는 문단에「데뷔」하는 여러 가지 방법 중에서 가장 순수하고 가장 화려한 등용문이다. 이 관문을 통과함으로써 어엿한 문인대접을 받고 활동하기에 따라서는 바쁜 시일 안에 문제작가로 발돋움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신춘 「중앙문예」출신 문인들로부터 신춘문예에 관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물어 본다. <편집자 주>

<그때의 열병 되살아나>
또 신춘문예의 계절이 다가온 모양이다. 도하 각 일간지들에 신춘문예모집공고가 커다랗게 1면을 장식하기 시작한걸 보면.
저 악몽과도 같은 신춘문예 응모시절의 끔찍한 기억을 잊지 못하고 있는 필자에게는 요즈음도 이맘때만 되면 그 때의 열병이 되살아나는 듯하다. 올해에는 기어이, 올해에는 기필코 저 과녁들 중 하나를 쏘아 맞히고 말아야지 하고 조바심 치던…. 요즈음도 그 열병은 상당히 만연해 있는 모양이다.
그러나 한편 생각하면 그 열병은 문학지망생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앓아 봄직한 달콤한 병이다. 해서 필자는 그 열병을 조금 먼저 앓아 본 경력자로서 보다 요령 있게 앓는 방법이랄까, 투병방법 몇 가지를 경험에 비추어 소개해 볼까 한다. 물론 먼저 경험한 자로서의, 경험하고 있는, 경험하려는 사람들에 대한 우정의 발로에서다.

<「투병방법」열 가지>
첫째, 욕심을 내지 말일이다. 두어 군데쯤 동시에 당선해서 사람들을 놀라게 해주고 싶겠지만 그것은 헛수고가 되기 쉽다. 요컨대 놀라게 하고 싶다는 마음부터 경계해야 한다.
둘째,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마지막은 내년일수도. 내후년일수도, 또 10년 후일수도 있다. 쉽사리 마지막을 결심할 바엔 처음부터 이런 따위의 모험은 않는 것이 좋다.
셋째, 눈치보지 말라. 심사위원이 누가 될 것인가를 짐작해 보려 하지 말라. 심사위원은 누구나 다 똑똑할 만큼은 똑똑하며 어리석을 만큼은 어리석다.
넷째, 반드시 기발한 것만을 쓰려고 하지 말라. 기발한 것은 자칫 보편성을 잃기 쉽다. 그러나 보편성과 상투성을 오해하진 말아야 한다.
다섯째, 예심을 걱정하지 말라. 예심에서 구슬이 파묻히는 경우는 지극히 적으며 설사 만에 하나 파묻히는 경우가 있다 하더라도 그런 일이 두 번 씩 일어나지는 않는다.
여섯째. 신춘문예 당선작들의 유형을 살피려고 하지 말라. 그것은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 당신이 쓸 수 있는 최선의 것을 쓰라.
당신이 만일 그렇게 하고서도 낙선한다면 그것은 당신의 불명예는 아니다.
일곱째, 신춘문예를 사법고시쯤으로 착각하진 말라. 신춘문예에 당선했다고 해서 탄탄대로가 열리는 것은 아니다. 또 신춘문예에 당선했다고 해서 당신의 전화청약 순위가 바뀌는 것도 아니다(당신의, 6등 시민의 자격에는 변함이 없다).
여덟째, 약속을 지 키라. 맞춤법·띄어쓰기·원고지 쓰는 법 따위는 기본적인 약속이다. 그러나 그런 기본적인 약속도 지킬 줄 모르는 사람이 있다. 심사위원들은 약속을 지킬 줄 모르는 사람을 신용하진 않는다.
아홉째, 그리고 무엇보다 당신의 열병을 사랑하라. 당신이 앓는 열병은 돈주고도 못사는 병이다. 병력은 나중에 당신의 재산이 된다.
그리고 열째(이것이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하다), 당신은 이따위 글을 신용하지 말라. 당신이 신용해야 할 것은 당신 자신의, 인간과 세계를 향해 열린 마음이며 당신이 그것들에 대해 이해한 몫을 표현하고자 하는 당신 자신의 노력뿐이다. 그리고 그것을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다.

<필자약력>
▲41년 서울 출생
▲68년 경희대 국문과 동 대학원 졸업
▲70년 신춘「중앙문예」서 소설『매일 죽는 사람』당선「데뷔」
▲현재 경희대 강사
▲『겨울여자』『아메리카』『왕십리』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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