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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택 기자의 '불효일기'<12화>암환자는 견뎌야 한다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암환자의 가족들은 다들 억울하다. 물론 100%는 아니다. 하지만 누구나 사연이 있다. 억울하다고. 왜 하필 나 자신인가. 아니면, 왜 하필 우리 아버지, 어머니, 남편, 아내, 아들, 딸이 암에 걸려야 하느냐고 말이다. 누군가를 원망하기 시작한다. 다른 모든 병처럼, 암 역시 스트레스가 주요 원인 중 하나로 꼽히지 않는가.

이 글을 있는 암환자 본인은 물론, 가족 독자들은 저마다 원망스러운 누군가가 생각날지도 모른다.

미안한 이야기지만 용서해야 한다. 젊은 기자가 훈계조로 이야기하는 것이라 생각하는 독자들께는 양해를 구한다. 하지만 용서하지 않으면 암환자 본인, 내 가족인 암환자에게 오롯이 집중을 할 수가 없다. 그래서 견뎌야 한다.

하지만 또 견뎌야 할 것이 있다. 바로 통증이다. 통증이 심해지면 암환자의 삶의 질은 곤두박질친다. 내 아버지 역시 그랬다. 며칠 전 만난 아버지는 수척했다. 그냥도 빼빼 마른 모습인데 표정까지 관리가 잘 되지 않았다.

나중에 어머니께 들은 이야기지만, 최근 1주일 동안 아버지는 밤에 끙끙 앓느라 밤에 잠을 거의 이루지 못했다고 한다. 아들 앞에서는 내색을 하지 않았던 것 뿐이다.

'아이알코돈정'이라는 약이 추가 처방됐다. 이전에 복용하던 '타진'이 오랜 시간 동안 지속이 되는 대신 약을 먹은 즉시 통증이 가라앉지 않는다면, 아이알코돈정은 지속시간이 4시간 이내인 대신 약을 먹은 뒤 5분이 지나면 통증이 가라앉는다고 한다.

아버지에게는 `아이알코돈정`이라는 약이 추가로 처방됐다. 사진은 아버지가 들고 온 약봉지. [이현택 기자]

통증의 원인 역시 암이었다. 암인지 아닌지 여부가 불분명했던 왼쪽 갈비뼈 인근 통증은 PET-CT를 거쳐 결국 암으로 최종 진단됐다. 폐로 전이된 암이 일부 뼈로 옮겨붙은 것이다. 다행히 방사선 치료를 하면 작아져서 통증이 가라앉을 수 있다는 이야기에 마음을 안도해 본다.

예전에 아버지 암 초기였더라면 '전이'라는 말 한 마디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을 것이다. 그 때만 해도 암이 전이되면 바로 사람이 죽는 줄 알았다. 그 때문에 어머니와 끌어안고 "일만 하다가 아픈 네 아버지는 어떡하느냐"는 이야기를 들으며 엉엉 울던 것이 지금도 기억에 난다. 하지만 지금은 격세지감(隔世之感)이다.

아버지는 곧 방사선치료를 받게 된다. 10회 예정돼 있다. 그나마도 고마운(?) 상황이다. 2년전 방사선 치료 당시에는 33회를 했었다. 아버지가 체력적으로 겪어야 했을 피로와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이번엔 10회 정도만 하면 끝난다고 하니, 응원과 함께 방사선치료실 밖에서 기다리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 될 것이다. 체력 관리가 문제다. 꾸준한 운동과 좋은 식사 외엔 답이 없는 것 같다.

통증은 어떻게 오나

통증은 예상치 못하게 찾아온다. 예상한 때에 오면 약을 먹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거참 못된 암이다. 아버지의 경우 식사 후 1시간 동안 통증이 왔던 적도 있다고 한다. 위암은 거의 사라졌다고 하던데, 왜 그리 밥을 먹으면 통증이 오는 것인지 야속하다.

어떤 때는 산책 중에 갑자기 갈비뼈 인근이 아프다고 하신다. 때문에 좋은 컨디션으로 산책을 하던 중에 통증이 찾아온다. 이럴 때 아버지에게 전화라도 하면 미안할 때가 많다. 아프니깐 전화끊자고 하면 될 것을, 아버지는 굳이 아들의 안부와 오늘 하루 한 일, 이후 할 일, 아침 점심 저녁 메뉴까지 물어보신다. 물론 많은 부모님들은 "그게 부모 마음"이라고 하시겠지.

잠자리에 들기 전 아픈 것도 암환자 아버지를 자주 괴롭힌다. 그러면 소리를 줄여놓은 TV를 바라본다. 아버지가 좋아하는 음식 관련 콘텐트가 나오는 채널을 튼다. 옆에서 자고 있는 어머니가 행여나 깰까봐 소리를 줄여놓고, 볼륨을 절대 올리지 않는다. 잘 이해가 안 되더라고 그냥 본다.

아버지는 사실 남의 눈치를 보는 사람이 아닌데, 암에 걸린 이후로 타인의 반응에 유독 민감해한다. 자신은 힘없는 암환자라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 때문에 나는 "그냥 하시고 싶은 대로 하시라"고 주문하는데, 그 역시도 쉽지 않은 모양이다.

또한 입원 중에는 아프지 않다가, 퇴원하고 나면 아픈 경우도 많다. 의사들에게 물어보면 "원래 퇴원하시면 아파요"라는 답이 돌아올 때도 꽤 있다.

아버지는 요즘 통증이 오면 메모를 하고 있다. 더 효과적인 치료 방법을 위해 의사에게 제출하기 위함이다. 무조건 참으면 오히려 통증이 조절이 잘 안되니, 기록을 하고 이를 의사에게 보여주면서 적절한 진통 방안을 찾아야 한다. '잘 견디는 지혜'가 필요한 것이다.

"낮잠도 견뎌야 한다"

아버지에게는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에피소드가 있었다. 점심을 먹으면 아버지는 잠이 온다. 물론 일반인도 식곤증이 오겠지만, 암환자는 거의 쓰러지듯이 잠을 잔다. 아버지는 식도암 환자라 밥을 먹고서도 누워서 잠을 자지 않는다. 혹시 체할 수 있기 때문에. 실제로도 음식물이 식도 절단 부위에 많이 걸린다고 한다.

예전에는 달콤한 낮잠을 많이 잤지만, 요즘에는 그마저도 안 자려고 노력한다고 했다. 이유를 물어봤다.

"그냥 잠 오면 주무시지 그랬어요."

"아플 때 자려고. 안 아플 때는 잠자면 아깝잖아. 아플 때 자면 좀 덜 아플거 아냐. 그런데 막상 아플 때는 잠이 안 와. 그래서 또 끙끙 앓고."

다행히 진통제 구성을 좀 바꾼 뒤로는 잠을 잘 주무신다고 한다. 치료도 잘 되어야 하겠지만, 아버지가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 안 아픈 '착한 암'만 아버지와 함께하기를 빌며.

아버지에게 연락이 왔다. 나와 식사를 한 뒤 약을 먹고 버스를 탔는데, 덜 아픈 것 같다고 한다. 아버지는 "혼자만 흡입해서 미안"이라고 한다. 요즘 스마트폰을 꾸준히 만지시더니, 인터넷 용어를 배우신 모양이다. 계속 '흡입'하셔서 건강 좀 차리셨으면 좋겠다.

아버지가 보내온 메시지. [이현택 기자]

* ps. 글을 쓰고 나서 며칠 뒤. 아버지와 전화 통화를 했는데, 다시 아프시다고 한다. 이를 어쩌나. 아… 아버지. 결국 아버지는 의사와의 상담 후, 진통제 '타진'을 '옥시콘틴서방정10mg'으로 바꿨다

* ps2. 사실 이번 12화의 제목은 '암환자는 참아야 한다'였다. 하지만 통증을 참아야 한다는 식으로 읽힐까봐 바꿨다. 통증은 참지 말고 잘 기록하면서 통증을 달랠 방법을 의사에게 받아야 한다. 그러려면 통증일지를 써야 한다고 한다. 아버지는 컴퓨터를 켜서 깨끗하게 정리하고 있다. 그런 것까지 깔끔을 떠시다니.

이현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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