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울한 옥살이 19년, 흑인차별과 맞싸운 투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3면

프로 권투선수 루빈 카터. 결국 무죄로 풀려나며 부당한 인종차별의 상징이 됐다. [AP=뉴시스]

백인 배심원들에 의해 억울하게 살인 유죄 평결을 받고 19년간 옥살이를 한 미국 흑백 인종차별의 상징이자 프로 권투선수 루빈 ‘허리케인’ 카터가 20일(현지시간) 별세했다. 76세.

 그의 친구이며 함께 살인 혐의로 투옥됐던 존 아티스는 “카터가 토론토 집에서 잠을 자다 숨을 거뒀다”고 말했다. 그는 전립선암으로 투병해왔다. AP 등 외신들은 “끝까지 자유를 향한 희망을 포기하지 않았고 무고한 죄수들을 위해 여생을 바친 카터가 떠났다”며 사망소식을 전했다.

 1937년 뉴저지주에서 태어난 카터는 60년대 초 미들급 프로 권투선수로 활약했다. 40전 27승(19KO) 1무 12패를 기록했고 초기 24경기에서 얻은 20승 대부분은 KO승이었다. 허리케인처럼 몰아치는 강한 펀치 때문에 ‘허리케인’이란 별명이 붙었다. 63년 웰터급 세계챔피언 에밀리 그리피스를 1라운드에 꺾어 파란을 일으키며 승승장구했다.

 그러나 그의 인생은 66년 뉴저지주 선술집 살인사건으로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졌다. 백인 3명이 흑인 남자 2명의 총에 맞아 사망한 사건에 연루돼 살인 누명을 뒤집어 썼다. 카터와 친구 아티스가 사건 당일 밤 우연히 차를 몰고 주변을 지난 것이 화근이었다. 카터는 12세 때 폭행 사건으로 소년원에 수감됐고 몇 차례 강도 행각으로 4년간 투옥된 전과도 있었다. 무죄를 주장했지만 전원 백인으로 구성된 배심원단은 그가 흑인이란 이유로 종신형을 결정했다. 76년 재판이 다시 열렸지만 역시 유죄 판결을 받았다.

 세계적인 프로 복서 무하마드 알리 등 수많은 사람의 탄원이 이어졌고 85년 지방법원 판사는 “증거가 아닌 인종 차별에 의해, 공개가 아닌 은폐에 의해 카터가 기소됐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카터는 풀려난 뒤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죄수들을 도우며 살았다.

 카터의 고난과 인종 차별에 대한 이야기는 75년 포크 가수 밥 딜런의 노래 ‘허리케인’으로 세상에 알려졌다. 99년엔 덴젤 워싱턴 주연의 영화 ‘허리케인 카터’가 제작됐다. 워싱턴은 성명을 통해 “카터는 모두를 위한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지치지 않고 싸워왔다”며 명복을 빌었다.

이정헌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