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문 없는 베스트셀러-종교서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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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우리 나라 서점가가 어느 때없이 종교서적들로 활기를 띠어 「반가운 현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종래의 종교서적이란 성직자나 일부 교인들만의 것으로 여겨왔던 것이 이제는 훌륭한 「인기 서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현상으로 지금껏 외면해오던 일반 출판사까지도 종교서적의 간행에 열의를 보이고 있다.
75년 한 해에 출간된 종교서적은 모두 5백 70여 종에 2백 21만 3천 9백 50부. 이것은 74년 4백 10여 종에 1백 34만 1천 7백 50부에 비하면 무려 34%가 늘어난 수치다. 한국 출협조사에 따르면 전체 장서 종별 발행 부수로 문학(4백 51만 9천 부)과 아동물(4백 22만 6천 9백 부)을 빼고는 종교서적이 가장 많은 발행 부수를 기록했으며 사회과학(1백 49만 7백 50부), 예술(87만 2천 1백 부), 기술과학(87만 7천 7백 부), 역사(48만 9천 9백 80부), 철학(46만 6천 6백 80부), 어학(60만 1천 3백 부)에 비하면 엄청나게 차이가 나고있다.
종교서적의 출간이 부쩍 늘어나고 또 잘 팔리는 현상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한 교직자는 전통적인 신앙과 가치가 전 세계적으로 흔들리고 있는 오늘날 사람들은 종교를 멀리하기보다는 오히려 종교에 더욱 가깝게 접근, 이해하려는 현상이라고 설명, 새로운 가치관과 신앙의 목적을 구명하려는 풍조를 반영하는 것이라고 했다. 종교서적 「붐」현상은 74년부터 일기 시작해 올해 들어 절정을 이루고있다.
종교서적 전문판매서점인 성「바오로」서원(서울 명동)에 따르면 올해 들어 서점을 찾는 고객은 지난해에 비해 30% 정도 늘어났다고 했다. 이 같은 증가 추세는 불교서적 전문서점인 불교 보급사와 기독교서회, 그리고 종로서적「센터」등도 비슷한 형편이다.
종교서적 「붐」은 미국도 마찬가지. 75년 종교서적 출판으로 미국에서만 1억 7천 60만「달러」의 매상고를 올렸는데 이것은 74년에 비해 20.4% 증가한 액수로 4가구 중 1가구가 평균 1권 이상의 종교서적을 샀다는 것이다(미국 「유·에스·뉴스」지 보도).
종교서적은 보수적이고 교리 적인 것, 그리고 신학적·종교적 논쟁보다는 복음주의를 바탕으로 한 것이긴 하나 교직자·목사·승려·신부 또는 종교학자들의 개인적인 신앙생활 체험에서 얻은 계시와 영향을 강조한 서적들이 인기를 얻고있다.
현재 종교서적 가운데 「베스트셀러」인 『불교강설』(윤주일 저), 『신앙의 등불』, 『피안의 메아리』(김대은 저) 등과 『천국의 열쇠』(「크로닌」작·이승우 역), 『성채』(「크 로닌」작·구혜영 역), 『아낌없이 주는 나무』(「실버스타인」작·김영무 역), 『꽃들에게 희망을』(「폴러스」작 ·김영무 역) 등이 모두 그런 유의 서적들이다.
특히 분도 출판사가 출간한 『꽃들에게 희망을』과 『아낌없이 주는 나무』는 75년 7월 초판을 낸 이래 3판을 거듭하면서 각각 3만 부씩 팔리는 이변(?)을 낳기도 했다. 이 두 권은 미국의 동화작가가 쓴 『어른이 보는 그림책』으로 「페이지」마다 그림과 글이 함께 실려있다.
『꽃들에게…』는 애벌레 한 쌍이 나비가 되는 과정에서 사랑·고통·꿈 등 여러 가지 생각을 독자에게 심어주며 『아낌없이…』는 한 그루 사과나무가 한 소년에게 기운 사랑을 그린 것으로 독자들에게 삶의 참뜻과 진실된 사랑이 어떤 것인가를 암시하는 내용이다. 이들의 뒤를 이어 최근에 나온 『지나쳐간 사람들』(「솔리벤」작·윤순임 역)도 같은 내용으로 출간 1개월만에 벌써 3천여 부가 팔려 인기를 얻고있다.
종교서적의 책값은 1백∼1천 원 사이. 종교서적을 찾는 고객의 대부분은 대학생 층의 젊은이들. 그리고 30, 40대도 상당한 숫자를 차지하고있어 일반서적에 못지 않은 광범위한 독자 폭을 지니고있다.
종교서적 「붐」현상에 대해 교직자·종교학자들은 여러 가지 이유를 들고있다.
서광선 교수(이화여대·종교철학)는 『사회의 각박하고 급격한 변화로 인한 비인간적 생활에서 오는 갈등과 의문을 종교에서 해답을 얻으려는 풍조가 생겼기 때문』이라 했고 김병수 신부(「카톨릭」출판사장)는 『세상이 어지러울 때는 사람들이 뭔가 본질적이고 영구적인 것, 즉 종교를 바탕으로 하는 근본적인 것에 집착하게 돼 종교서적도 이런 현상 때문에 많이 읽히고 있다』고 했다. <김준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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