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정부, 의도적으로 독도 개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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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과 마치무라 일본 외상이 7일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 매리어트 호텔에서 열린 한.일 외교장관 회담에 앞서 악수한 뒤 자리로 돌아서고 있다.[연합]

7일 오전 10시26분(한국시간 오후 2시26분) 파키스탄 수도 이슬라마바드 매리어트 호텔 1층 앰배서더Ⅱ룸. 30여 명의 취재진 앞에 반기문 외교부 장관이 모습을 드러냈다.

"여기서 회담을 하는군."

회담장 주변 이곳저곳을 둘러보는 그의 얼굴이 한껏 굳어져 있었다. 전날 한.중 외교장관 회담을 할 때와는 딴판이었다.

5분 뒤인 오전 10시31분. 회담 예정시간을 1분 넘겨 마치무라 노부타카(町村信孝)일본 외상이 회담장에 들어섰다.

"굿 모닝." 마치무라 외상이 손을 내밀며 먼저 인사했다.

"하우와유." "파인, 생큐."

그걸로 끝이었다. 들릴까 말까 한 자그마한 목소리로, 손은 맞잡았지만 미소는 없었다.

자리에 앉자마자 반 장관은 직설적인 화법으로 일본 정부를 강도 높게 비판하기 시작했다. 당초 박준우 외교부 아태국장은 "오늘 할 얘기가 많으니 기자들은 3분 내로 나가달라"고 요청했지만 반 장관은 기자들 앞에서 5분 넘게 일장연설을 했다.

첫마디부터 심상찮았다. "이처럼 한.일 관계가 매우 좋지 않은 상황에서 만나게 돼 개인적으로 상당히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올 초 한.일 우정의 해를 제정하고 여러 민간행사가 진행되고 있었는데 시마네(島根)현 의회의 조례안이 통과되고, 자라는 청소년들에게 왜곡된 역사를 가르치려고 시도하면서 양국 관계가 극도로 악화돼 버렸다"고 비판했다.

그는 "특히 5일 검정을 통과한 교과서에 독도 영유권 부분이 기술돼 있고, 일본 정부가 이를 의도적으로 개악시킨 게 드러나면서 일본 정부의 사태수습 의지마저 믿을 수 없게 됐다"고 강하게 질타했다. 또 "외교장관 이전에 한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며 "국민의 분노를 외교에 적극 반영해 나갈 것"이라고 압박했다.

반 장관의 발언이 계속되는 동안 마치무라 외상의 표정은 점점 굳어져갔다. 처음엔 애써 희미한 미소를 지으려 했지만 반 장관이 모두발언을 끝낼 즈음엔 딱딱할 대로 딱딱해진 상태였다. 주위에 서 있던 일본 기자들도 반 장관이 인사말부터 강공으로 치고나오는 데 깜짝 놀라는 모습이었다.

반 장관의 '연설'이 끝나자 마치무라 외상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 "저도 지금의 양국 관계가 안 좋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런 상황이 계속돼서는 안 된다. 개선해야 한다. 오늘 자리가 양국 관계 개선을 위한 귀중한 첫걸음이 되기를 기대한다."

1분간 짧은 인사말을 마치고 마치무라 외상은 길게 심호흡을 했다.

하지만 이는 시작일 뿐이었다. 반 장관은 러.일전쟁부터 이어진 식민지 침탈 과정을 무려 1시간10분 동안 조목조목 열거했다. 나중엔 일본 측이 "다른 얘기도 좀 하자"고 말할 정도였다고 한다. 마치무라 외상은 낮 12시 정각에 회담장을 빠져나갔다. 기자들에게 매우 신경질적인 반응도 보였다. 조금 뒤 반 장관이 나왔다. '분위기가 안 좋았던 것 같다'고 하자 "비장한 각오를 하고 나왔는데, 분위기가 좋았을 리가 없죠"라고 답했다.

실제 정부 대표단은 이날 오전 6시부터 대책회의를 열고 회담전략을 가다듬었다고 한다. 반 장관은 이 자리에서 "1박4일이란 빠듯한 스케줄을 감내하고 여기까지 왔다. 오늘은 어떤 일이 있어도 일본에 사태의 심각성을 분명히, 확실하게 인식시키겠다"며 각오를 다졌다고 한 참석자는 전했다.

이날 회담 시작 전 반 장관의 자리엔 A4 용지 10쪽 분량의 '말씀자료'가 놓여졌다. "할 얘기는 다 하겠다는 뜻"이라고 당국자는 말했다.

이슬라마바드=박신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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