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이상학은 죽은 학문인가-철학회서 토론된 「분석철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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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철학은 형이상학이어서는 안되고 사변적인 방법만으로는 객관 타당성을 생명으로 하는 학문의 영역에 포함시킬 수 없다. 따라서 철학이 학문으로 성립되기 위해서는 실체를 실증할 수 있는 분석철학 형태로 발전해야 한다.』 최근 영미에서 「루트비히·비트겐슈타인」(1951년 작고)이래 철학의 절대적 조류가 되고 있는「분석철학」이 국내·최초로 공식토론 됐다.
한국철학회(회장 김태길)는 추계발표회(30일·서울대) 주제를 『형이상학과 반형이상학』으로 설정, 형이상학을 중심으로 하는 종래의 철학과 실증할 수 있는 것만을 다루는 것이 철학이라는 분석철학을 놓고 일대논쟁을 벌였다. 특히 이날 「반형이상학」의 입장에서 주제 발표한 이명현 교수(외국어대)는 『2천5백년 서양철학사를 형이상학과 그에 대한 반동의 역사』라고 규정, 역사상 초기의 학문형태는 모두 철학으로 대표되는 형이상학의 영역에 속했으나 중세이후 「데카르트」 「칸트」 등을 거치면서 자연·사회과학이 형이상학에서 이탈됐다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최근까지만 해도 형이상학(철학)은 분과학문(형이상학에서 이탈된 정치 경제 심리사회과학)의 우위에 서서 분과학문이 해결하지 못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것으로 그 역할이 인정돼 왔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교수는 50년대 이후 논리학의 눈부신 발전은 형이상학이 「실증과학」이 아닌 이상 학문으로서는 성립될 수 없음을 밝혀 냈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그 이유로 형이상학의 대상이었던 「사실」 「논리」 「가치」의 문제가 「사실」은 사회·자연과학의 영역으로, 「논리」는 수학의 영역으로 이관됐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남은 「가치」의 문제도 선·악의 객관적 기준과 경험적 근거를 형이상학이 제시하지 못하기 때문에 학문이 될 수 없다고 말했다. 따라서 이 교수는 「형이상학」이라는 용어가 학문세계에서는 응용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형이상학과 철학을 똑같은 것으로 생각했던 종래의 철학자들간에 새로운 철학의 대상과 방법의 모색이 불가피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에 대한 해결방안을 최초로 제시한 사람이 영국 「게임브리지」대학에서 주로 강의한 「비트겐슈타인」이었다. 경험적이고 실증할 수 있는 사실만을 철학의 영역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50, 60년대 영미를 휩쓴 「비트겐슈타인」의 철학대상과 방법론은 미국의 「쉬릭」 「카르나프」 「헴팰」 「파이글」 「존·롤즈」 등에 연결되고 영국에서는 「P·F·스트로슨」 「길버트·라일」 「J·L·오스틴」 등에 승계, 영 미 철학의 주류가 됐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이를 분석철학자(혹은 과학적 철학자)들의 철학대상과 방법은 종래 사용돼 왔던 모든 학문 언어의 논리적인 분석이라고 요약했다.
「가치」 「정의」 「인간」 「자유」 등 대부분 종래의 형이상학에서 사용했던 언어가 직관과 감정에 의해 생겨났기 때문에 객관·타당성이 없었다는 것이다.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분석철학자들은 최소한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명제를 설정, 모호한 용어를 논리적으로 분석하는 것이 형이상학과 분리된 철학의 영역으로 주장한다고 이 교수는 밝혔다.
이 같은 철학의 대상과 방법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주장은 형이상학과 철학을 동일시해 온 종래의 학자들에게 커다란 충격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 같다.
형이상학 측을 대표해 주제 발표한 김정선 교수(수도여사대)는 분석철학이 최근에 영미에서 유행한 철학의 한 조류일 뿐 절대적인 것은 아니라고 반박했다.
특히 언어분석만이 철학의 할 일이라고 말하는 분석철학자들의 주장은 분과과학들이 잘못된 길로 진리를 오도할 때 속수무책이라고 토론자들은 지적했다.
그러나 30일 하오에 열렸던 토론회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철학이 「직관·사변적인 학문」에서 「실증·과학·객관화 돼야 한다」는 분석철학의 주장이 한국철학계에 깊이 영향을 줄 것이라는데 의견을 같이했다. <임연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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