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창경원의 동물가족 겨우살이 준비 한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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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가을 속의 겨울날씨를 맞은 요즘의 창경원은 월동채비가 한창이다. 아침기온이 섭씨 0도에 가까워지자 열대·아열대 산이 대부분인 창경원 동물가족들은 벌써 추위를 타 바깥 우리로 나올 생각을 않고 있다.
사람들은 이맘때면 김장걱정·연탄걱정을 하지만 동물가족들은 사람들이 마련해 준 연탄「가스」걱정 없는 기름「보일러」때는 방에서 팔자가 늘어졌다.
창경원당국은 동물가족들이 따뜻하게 겨울을 날수 있도록 내년 봄까지의 연료와 먹이준비들을 이미 끝냈고 지난 19일부터는 아침·저녁으로「보일러」를 가동하고 있다.
연료준비를 보면「맨션·아파트」가 부럽지 않게「벙커」C유가 18만ℓ, 경유가 8만ℓ. 특히 지난달15일 준공된 맹수 사는 온돌식의「플로·히텅·시스템」으로 시설되어 호랑이 등이 엉덩이가 뜨뜻하게 겨울을 나게 됐다.
동물들이 겨울철동안 먹어 치울 먹이준비도 엄청나다. 과실종류는 이제 한겨울에도 구할 수 있으나 대량으로 소비되는 풀이 문제. 그래서 건초가 3만6천kg,「아카시아」 잎이 2천kg이나 준비됐다.
인간이 동물들을 위해 월동준비를 해주지만 동물들은 스스로도 이미 월동준비를 끝냈다. 그것은 많이 먹어 두기와 털갈이.
동물들은 가을이 시작되면서 식욕이 왕성해져 허기 들린 놈들처럼 계속 먹고 있다. 여름철엔 더위를 먹어 밥투정을 했으나 요즘은 먹이를 주기가 무섭게 게눈 감추듯 먹어 치우고 암·수끼리도 먹이다툼을 할 정도.
동물들은 기나긴 겨울을 위해 가을부터 든든히 먹어 두는 것 외에 추위를 직접 막기 위한 털갈이를 늦여름부터 시작해서 10월초에 끝냈다.
여름철동안「나체미인」으로 있던 낙타는 뽀얀 털로 완전히 갈았고 제철을 만난 백곰의 희고 고운 긴 털에서는 윤기마저 흐른다. 그러나 공작은 잔털이 나느라 오색찬란한 꼬리털이 모두 빠져「꽁지 빠진 새」.
특히 창경원당국은 지난19일과 27일 들여온 새 식구 53마리 중 수 얼룩말과 암「푸마」·암「에미우」각1마리는 그동안 외톨로 지내 온 짝들에게 합 사, 기나긴 겨울밤을 외롭지 않게 보내게 해주었다.
기온이 내려가면서 가장 추위를 타는 놈은 원숭이「고릴라」「침팬지」등. 꼴에 사람을 닮았다고 아침 기온이 섭씨7∼8도로만 내려가도 기를 펴지 못한다.
하마는 원래 열대습지에 살던 놈이라 한 겨울에도 영상 20도가 유지되는 전용실내「풀」 을 가질 정도의 최고급 생활이다. 그러나 보기보다는 의외로 추위를 타는 동물이 호랑이. 지금 창경원에 있는 호랑이는 한국 산이나「시베리아」산이 아니고 아열대출신이기 때문이다.
창경원에서 가을과 겨울은 뭐니 해도 사슴의 계절. 사슴우리에서는 겨우내 9마리의 후궁(?)을 누가 독차지하느냐 하는 복 전을 건「왕위전하」11월초 이미 끝났다. 혈전으로 상처가 날까 보아 사육 사들이 뿔을 미리 잘라 12마리의 수사슴들은 뿔 없는 이마로 자웅을 가린 결과 7세 짜리 대만산 꽃사슴이 작년에 이어 2연패했다.
그전에는 64년 휴전선비무장지대에서 잡힌 한국산「자유」호가 13세가 될 때까지 계속 패권을 잡아왔으나 계속되는 근친교배를 우려한 사육 사들이 작년「자유」호를 강제 퇴위시키고 새로운 왕위전을 가졌었다.
창경원 우리 속에서도 적자만이 생존하는 동물세계의 비정한 철칙이 그대로 적용돼 작년에 이어 패자가 된 대만산 꽃사슴은 9마리의 암사슴들을 한우리에 거느리고 승리에 도취해 있는가 하면 싸움에 진 수사슴들은 바로 옆 우 리에 한데 모여 와신상담(?), 내년 가을에나 있을 도전 전을 위해 열심히 뿔을 갈고 있다. <이영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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