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칼럼] 주한미군 논의할 때 아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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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주한미군의 규모와 주둔 위치 조정을 둘러싼 한.미 간의 불협화음은 최근 북.미 관계의 긴장 고조를 반영하고 있다. 북.미 양국 정부는 북핵 문제를 둘러싼 서로의 움직임을 의심에 찬 눈초리로 주시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많은 시민들이 한국전쟁 이후 반세기 동안 대규모의 미군부대가 서울 시내에 주둔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거북해(irritation)하고 있다.

한편 펜타곤(미 국방부)은 주요 병력이 서울 북쪽의 제한된 위치에 묶여 있고, 이 지역적 한계가 북한군이 미군의 활동을 쉽사리 추정하게 만든다는 불안을 가져왔다.

*** 한국인들이 느낀 두가지 두려움

최근 도널드 럼즈펠드 미 국방장관의 주한미군 철수.재배치 가능성 언급은 한국인들에게 서로 상충되는 두 종류의 두려움을 느끼게 만들었다.

하나는 미국이 전쟁 발발시 주한미군이 자동 개입하게 돼 있는 인계철선(引繫鐵線.trip wire) 역할을 포기하면, 한반도에서의 전쟁억지 효과 역시 약화될 것이라는 불안이다.

또 하나는 만일 주한미군이 한강 이남으로 재배치된다면 미 정부가 영변 핵시설에 대한 선제 공격을 계획하지 않겠느냐는 추측이다. 이 두 가지 두려움을 해소하는 것은 한.미 양국 정부가 우선적으로 수행해야 할 과제다.

지난 수십년간 한국은 많은 변화를 겪었다. 그러나 주한미군에 대한 논의에서는 그다지 변한 게 없다. 한국의 신세대들은 주한미군의 가치에 대해 의문을 갖고 있으며 한.미 주둔군지위협정(SOFA)을 자국의 주권에 대한 모독으로 인식하기도 한다.

뉴욕 타임스의 칼럼니스트 윌리엄 새파이어, 워싱턴포스트 극우파 논객 찰스 크라우새머, 미 국방정책위원회의 켄 아델만 같은 미국의 보수적인 논평가들은 주한미군 주요 병력의 철수를 고려할 것을 제시한 바 있다.

이는 만일 미국의 군대가 더 이상 한국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상황이라면 우리는 떠날 수도 있다는 점을 상기시키는 동시에 러시아와 중국이 북한 핵 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도록 압력을 가하려는 의도이기도 하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지금은 주한미군 병력의 재조정과 재배치를 논의하기에 적절한 시기가 아니다. 이는 한반도의 안보상황이 안정됐을 때 서서히 논의할 문제다. 위험이 고조되고 있는 이때에 군감축 및 철수 언급은 적과 아군 양쪽 모두에게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냉전 종식 이후 미국은 1990년 '동아시아 전략구상(EASI)'을 통해 미군의 역할을 '주도적'에서 '보조적'으로 바꾸는 단계적 철군 계획을 한국 .일본.필리핀 등 아시아 우방들에 제시했다.

주한미군에 대해서도 3단계 철수안을 계획, 92년 1단계로 7천여명의 주한미군이 철수한 바 있다. 그러나 93~94년 1차 북핵 위기로 2단계부터의 철군 계획은 백지화된 채 현재에 이르고 있다.

북한에 대한 긴장감이 다시 높아지고 있는 이때에 그동안 유보돼 온 주한미군 감축 문제를 꺼내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북한은 핵 문제에 대해 한계선을 넘을 것이라 위협하고 있으며 이는 북의 미사일 발사 실험으로 확인됐다.

북측이 주장하고 있는 북.미 불가침 조약의 체결도 미군 감축을 부추기기 위한 도구로 이용될 가능성이 크다. 이에 대한 우려로 미국은 한국의 직접적인 개입 없이는 북한과 협상하지 않겠다는 확고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 양국의 이익에 모두 부합돼야

노무현 대통령은 미국에 보다 호혜적이고 평등한 파트너십에 대한 희망을 밝혔으며 미국도 높아진 테러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세계 각지의 군병력 재구성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므로 주한미군 조정에 대한 논의가 가까운 미래에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이같은 논의는 시기적절할 때에 양국의 이익에 모두 부합된다는 확신을 갖고 시작해야 한다.

지정학적 불확실성이 팽배한 이 시점에 미군의 재배치는 보다 큰 전략적 목적들에 부합되도록 디자인되는 하나의 수단일 뿐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다양한 선택을 두고 논의가 이뤄질 시기가 온 것은 분명하나 주한미군 병력의 재조정을 결행하기에는 시기상조다.

정리=신은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