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황판단 헛다리…궁지 몰린 美 매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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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이라크전이 장기화할 조짐을 보이면서 딕 체니 부통령,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 등 미국 행정부의 '매파'들이 궁지에 몰리고 있다.

미 언론은 이들이 "전쟁이 터지기만 하면 승리는 식은죽 먹기"라고 주장했던 사실을 상기시키면서 "속전속결만을 앞세웠던 펜타곤(국방부)의 전략에 대해 전투 현장의 군 지휘부에서부터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군사적 판단 착오는 결국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정치적 부담으로 이어질 전망이다.

이라크전이 터지기 사흘 전인 지난 16일 체니 부통령은 미 방송사 몇 곳에 출연했다.

CBS의 대담 프로에 나온 그는 "이라크전은 몇 달이 아니라 몇 주 안에 끝날 것"이라고 장담했다. NBC에서는 "이라크 군은 우리하고 싸우려고도 하지 않을 것이며 최정예라는 공화국수비대의 상당수도 전쟁에서 비켜설 것"이라고 말했다.

미군이 해방군으로 환영받게 될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하지만 개전 후 이런 판단은 현실과 완전히 동떨어진 것으로 드러났다. 이라크 국민은 미군을 해방군으로 받아들이기는커녕 자살공격으로 맞서고 있다.

미 언론은 또 "사담 후세인에 대한 이라크 국민의 지지는 미군의 폭탄 바람이 한번 스치고 지나가면 그대로 무너진다"던 리처드 펄 전 백악관 국방자문위원장의 발언도 대표적인 '헛다리 짚기'였다고 지적하고 있다.

럼즈펠드 국방장관도 어려운 처지다. 군 내부의 불만 때문이다. 워싱턴 포스트는 30일 "이라크전에 참전한 지휘관을 포함해 12명 이상의 지휘관이 럼즈펠드의 전략을 비난했다"고 보도했다.

럼즈펠드 장관이 첨단 공군력에만 의존, 소규모의 지상군만 이라크에 파병하는 바람에 문제가 생겼다는 주장이다.

미 시사종합 주간지 '뉴요커'도 최신호에서 "럼즈펠드 장관이 작전의 세부내용까지 간섭하면서 군 수뇌부의 권고를 묵살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부시 대통령은 지난 28일 전시내각을 소집한 자리에서 럼즈펠드 장관에 대한 신임을 다시 한번 표시했다고 미 언론은 전했다. 애리 플라이셔 백악관 대변인도 "아직 체니 부통령의 주장이 틀렸다고 하기에는 시간이 남아 있지 않으냐"고 옹호했다.

워싱턴=김종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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