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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공에도「솔제니친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중공을 여러 번 방문했던「캐나다」의 중공통 언론인「마크·게인」은 최근『「솔제니친」은 중공에도 있다』고 말해 중공에도「솔제니친」과 같은 반체제 작가가 있느냐는 의구심과 놀람을 안겨주었다. 중공에도「솔제니친」유의 인물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 성격은 소련의 반체제「그룹」과 일치하지 않는다.
「게인」은 중공의「솔제니친」들로 소위 삼가촌「그룹」인 오합·등척·요말사를 들었는데 여기에는 당연히 전한이 끼어야한다.
오합(저명한 사가이며 작가·전 북경 부시장)은 59년 모가 팽덕회(전 국방상)를 실각시킨 것을 풍자하여「해서파궁」이란 희곡을 61년에 썼다. 해서는 성실하고 유능한 관리로 폭군에 의해 면관된 14세기의 실제인물인데 오는 해서에 빗대어 모가 팽을 숙청한 잘못을 꼬집었던 것.
또 삼가촌「그룹」이 고정집필 했던 수필「삼시촌예기」와「연산야화」등에는 모의 정책과 망상을 우화적으로 비판한 것이 많았다.
이들 중공의「솔제니친」들은 그러나 모두 유소기파가 실권을 장악하고 있던 시기에 유일파의 첨병의 입장에서 모의 권력을 약화시키려는 의도로 문필활동을 했다는 점을 생각할 때「솔제니친」과 같은 반체제지식인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하겠다.
왜냐하면 소련지식인이 느끼고 있는 서구의 의회 민주주의적 사회체제에 대한 전통적 동경심이 중공에는 거의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들보다는 56년「백화제방」운동에서 당과 정부에 대해 신랄한 공격을 퍼부었던 지식인들이 진정한「솔제니친」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들은 지금 모두 침묵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중공에도「솔제니친」과 같은 반체제운동을 음성적으로 벌이는 불특정한 무리들이 다시 나타나는 조짐을 보여 주목을 끌기 시작했다.
문혁 이후 중공은 1천3백만명이나 되는 학생들을 농촌과 공장으로 보냈다. 이른바「하방」운동이다. 이들 중 다수가 그 생활에 불만을 품고 도시로 잠입하여 정주에서는 무장은행「갱」으로 둔갑하여 금고를 털어 가면서「정주시 뿐만 아니라 하남성 전체를 1m씩 뒤집어 파낸다 해도 우리를 잡지 못할 것이다」라는 대담한 대자보를 써 붙이고 달아났다고 한다.
이들 젊은「솔제니친」들은 모가 강조하고 헌법에도 명시한 대자보를 활용하고 있는 것이 특색이다.
74년 광주에는 이하모라는 30세의 예술학생 2명이 연서한 대자보가 나타났다. 「당은 도처에서 혁명을 배반하고 문혁 후 오히려 특권층이 나타나 자신들이 누리는 지위나 특권을 자기 자식들에게 물려주려 한다.
이러한 새로운 정치형태는 허위와 위선과 지도자의 신격화를 초래한다」는 집권층에 대한 통렬한 비난이 그 내용이었다.
금년 3월6일 광주에는 강청의 하야를 요구하는 대자보가 나타났는가하면 젊은 세대들은 또 금서를 교묘히 입수하여 돌려가며 읽기도 한다.
그래서 중공은 69년부터 전문작가·편집인·노동자·농민·군인 등이 공동 집필하는 방식으로 책을 출판하고 있다. 중공에서 1천만부나 보급된「염양천」의 작가 호연은『이 같은 방법은 고도의 사회주의 이념을 소화하는데 가장 좋은 방법이며 문예계의 우경화 풍조를 일소할 수 있는 2중의 효과를 갖는다』고 주장했다.
또 중공은 이들 반체제 인사들과 그 작품을「반면교재」로 활용하여 대중교육에 역이용하고 있다는 점이 소련과는 다르다.
따라서 중공의「솔제니친」은 앞으로도 활동하겠지만 소련의 반체제 인사들과는 달리 그리 밝은 전망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이수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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