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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실천에 옮긴 중공의 무자개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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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홍콩UPI동양】중공은 건국이래 가장 어렵고 뜻깊은 계획의 하나인 문자개혁의 마지막단계, 즉 한어 표음안(로마자화 안)을 소련접경지대 서북변경이며 「위구르」족과 「카자크」족 등 13개 소수민족 1천만명이 사는 신미 「위구르」자치구에서 최근 실천에 옮김으로써 4천년 이상의 오랜 막자문화로부터의 대담한 탈피를 시도하기 시작했다.
당 주석 모택동이 1951년 『문자는 개혁되어야 하며 세계의 문자에서 공통적인 표음의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고 제시한 개혁방향에 따라 국내언어학자들이 지난25년간 연구 노력 끝에 「로마」자모 26자를 사용한 중국어의 새로운 표음자모 「배음」이 채용되었고 이제 한자를 대신해서 이 배음 자모가 최초로 한정된 지역에서 공식 사용되기에 이른 것이다.
중공 신화사통신은 중공영토의 6분의1을 차지, 영·불·독·이를 합친 것보다도 넓은 신강 「위구르」자치구에서 실시되기 시작한 한어 표음안은 그 첫 단계에서 인구 5백만 명의 「위구르」족, 그리고 70만 명의 「카자크」족의 언어에만 우선 적용된다고 말했는데 이것이 모택동의 문자개혁 구상의 방대한 실험단계인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신화사통신은 『한자개혁의 목적은 그 습득을 수월하게 만들고 사용에 편리하며 원자력과 초음속항공기, 그리고 단자계산기시대인 현대의 요구를 충족시키는데 있다』고 말했다.
중공의 문자개혁은 고 주은래 수상이 지적했듯이 ①한자의 간체화 ②보통어(표준어)의 보급 ③한어표음 안의 작성과 실시 등 세 단계로 추진되어 왔으며 「위구르」어 및 「카자크」어에 대한 첫 배음(표음자모)사용 안은 58년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한어 표음안이 승인된 다음해인 59년 기초되었고 60년 실험적인 실시가 시도됐었다.
중공은 64년3월 한자의 자형을 간소화한 표준 인쇄체 6천1백96자를 공식채택, 신강「위구르」자치구에 대한 실시계획을 마련하고 같은 해 10월 국무원의 승인을 얻었다.
65년1월 「로마」자화된 표음안이 제한된 범위 안에서 이 지역에 실시되기 시작됐으나 문화혁명의 발발로 그 진행이 둔화됐다가 70년대 초에 다시 이 운동이 새로운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고 신화사통신은 회고했다.
73년11월의 신화사통신보도는 신강「위구르」자치구에서 수민 1백50만 명 이상이 새로운 표음자모를 깨쳤다고 보도했었는데 지난8월1일부터 이것이 공용문자화 된 후에 이 통신보도는 다시 그 동안의 『시용 단계를 통해 「위구르」족 및 「카자크」족의 학교들이 새 표음문자를 가르쳐 왔으며 이미 약 1백만 명의 아동과 학생들이 졸업했으며 현재 1백만 명이 학습 중』이라고 덧붙였다.
보도는 새 표음문자해독인구가 구 한자해독자수를 능가하게 됐으며 현지의 다른 소수민족들도 새 문자학습을 시작했다고 전하고 이제 신강성의 신문·잡지와 당·정부 및 군부의 공문서, 그리고 지시문들이 사실상 모두 새 표음문자를 쓰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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