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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문점사건 서울-워싱턴 사이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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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판문점 도끼살인사건이후 만 10일-. 사건발생이후 미류나무 벌목작전, 김일성의 유감표명 메시지, 주한 미 전력의 증강, 살인자처벌 요구, 공동구역경비문제 등 북괴와 한미간을 잇는 후속사태는 긴장 도를 낮추지 않고 있다.
그동안 스나이더 주한 미 대사와 스틸웰 유엔군사령관이 청와대를 방문한 것만도 2, 3차례. 박동진 외무-스나이더 대사를 잇는 한미 외교창구를 통한 6, 7차례의 접촉도 더 계속될 상황이다.
외무부는 이번 사건이 한반도 안에서 일어났고 재발방지를 위한 방지책의 중대성에 비추어 대미외교접촉을 서울에만 국한시킬 수 없어 서울에서 오간 한미간의 얘기를 워싱턴에서 확인하고 워싱턴에서 오간 의견을 서울에서 확인하는 교차확인방법을 동원하고 있다.

<유엔 사와 협의 한국군 선발>
8·18만행이 일어 난지 사흘만인 8월21일 상오7시에 단행된「미류나무 작전」은 한-미 양국협조의 표본.
태권도훈련을 받은 64명의 비무장한국군부대는 스틸웰 유엔군사령관과 협의해 한국군에서 선발한 것. 국방부를 비롯, 관계기관에서는 뜬눈으로 20일 밤을 새웠고 절단작전 때 북괴가 방해하면 특정지구를 쑥대밭 만들려는 전략도 검토되지 않았겠느냐는 추측도 나돌았다.
만의 하나라도 북괴가 상해하려 들었더라면 전면전으로까지는 몰라도 국지전은 불가피했을 것이라는 게 군사전문가들의 분석.
스틸웰 사령관은 8·18사건이후 박정희 대통령에게 사건전말 및 경위를 보고하고 박대통령의 의견을 들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안보관계 한 고위당국자는 미류나무 절단작전이 끝난 뒤『한 고비 넘겼다』고 한숨을 돌리기도 했고 휴전 후 처음으로 유엔군이 이니셔티브를 완전 장악한 작전이었다고 평가했다.

<"일축"은 우리주장의 성과>
유감표시 김일성 메시지를 수락할 수 없다는 미국무성 논평이 월요일인 23일 국내신문에 보도되자 한 외무부관계자는『그와 같은 미국의 논평이 저절로 나온 게 아니다』고 대미접촉의 성과를 과시.
그의 설명으로는 문제의 미루나무 절단으로 힘을 과시한 미국은 김일성의「유감」메시지를 받아들임으로써 이번 일을 마무리 지으려는 조짐이 있었다는 것.
미국의 이같은 낌새를 파악한 정부는 미국에 대해 강력한 입장을 표시토록 하여 박동진 외무부장관이 일요일인데도 불구하고 스나이더 대사를 한남동 장관공관으로 불렀다고 했다.
약 1시간30분 동안 계속된「일요일의 요담」에서 박 장관의 태도는『매우 단호하고 완강했다』고.
당시 정부는 유엔군사령부가 판문점에 다시 관광객출입을 허용하려는 움직임과 특히 김의 메시지가 전달되는 회담에 한국 측 대표참석이 배제돼 메시지 내용도 사후에 유엔 사로부터 통보 받았다는 절차에 대해 문제점을 내놓았다는 후문.

<"우리" 표현, 한미협조 증명>
그러나 하루 지난 24일 미국무성 펀세드 대변인이 김의 메시지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인다는 태도변화를 보이자 정부가 미국의 사전협의를 받았느냐는 여부로 한때 논란.
외무부의 경우 박동진 장관은『사건발생이후 한국과 미국은 항상 긴밀한 연락을 취해 왔다』고 했고, 박쌍용 미주국장은『그동안 서로 긴밀한 협의를 계속해 왔는데 그걸 모르고 있어서야 되겠느냐』고 반문.
그러나 미국무성 정례 브리핑에서 공 표된『김 메시지 인정』은 그날 저녁 주미대사관이 새벽잠 속에 있던 서울에 릴레이 됐다는 얘기도 있다. 24일 새벽 외무부 담당국장의 자택전화는 통화중으로 바빴다.
그런가 하면 담당국장은 국무성 성명이『우리는 이것을 긍정적 단계로 생각한다는 등「우리」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은 한미간의 협의를 증명한다』고 해석했다.
이날 박 장관은 출근하자마자 스나이더 대사를 사무실로 불러들이는가 하면 26일 하루에도 상·하오에 걸쳐 두 번씩 만나는 것 외에 전화통화가 잦았고 워싱턴에서도 함병춘 대사가 하비브 차관을 만났다.

<북괴 제의속셈 미국에 경고>
박동진 외무장관과 스나이더 주한미국대사의 연쇄적인 요담에서 거론된 또 한가지 중요한 문제는 북괴가 26일 군사정전위 회의에서 제의한 판문점공동경비구역의 분할관리문제.
사건발생직후부터 정부는 사건재발방지책을 검토하면서 생각한 것이 공동경비구역의 경비문제 개선이었던 것.
비록 휴전협정에 따라 유엔군과 북괴군이 공동 경비토록 돼 있으나 한반도 내에서의 무력충돌 발생 및 그 처리가 이들 양측에 의해「요리」된다는 것부터 부자연스럽고 재발방지를 위한 우리의 확고한 태도표시가 어렵다는 게 그 발상이유.
그러면서도 정부가 북괴 제의를 경계한 것은 새로운 제안을 해 온 것이 사건책임자 처벌 등 우리측 요구를 회피하려는 술책일 가능성이 있다고 본 때문이다.
그러나 박동진 장관은 27일 스나이더 대사와의 요담에서 공동경비구역의 분할관리문제에 관해서도 의견교환이 있었다고 시인.
관계자는『북괴 측 제의에 대한 우리측 대응방안은 두 사람의 요담에서 합의가 끝났다』고 전언.

<역공세 준비에 외무부 부산>
8·18사건이후 한미교섭 등으로 훨씬 분주해진 외무부는 외신과를 거쳐 수발되는 암호전문과 일반전문의 분량만도 평상시의 약 3배. 문서담당관 실엔 사건진상 홍보 물과 일지 등 유인물 파우치가 발 들여놓을 자리가 없도록 쌓이는 실정.
이상훈 미주 국 심의 관을 반장으로 하고 미주 국과 정보문화 국 과장들로 판문점사건을 전담하는 특별작업반이 구성돼 미 의회의 반응을 비롯한 외국의 각계각층 반응 및 정보수집·사건영향 분석·대외홍보자료 작성 등의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외무부는 북괴가 대통령선거를 앞둔 미국을 상대로 주한미군철수 논을 야기 시키는 한편 유엔에서도 한반도 긴장주장과 주한미군존재를 부각시켜 한국 측을 궁지에 몰아넣으려 할 것으로 예상, 이에 대한 외교적 역공세를 펼 방침인 것 같다. <한남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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