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주꾸미가 왔어요" 선장이 손님 맞는 어시장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8면

인천 북성포구에서는 조업을 나갔던 배가 들어오면 즉석 어시장이 선다. 배 위에서 어부들과 흥정하며 자연산 해산물을 다른 어시장보다 싼 가격에 살 수 있다. [김상선 기자]

일요일인 13일 낮 12시 인천시 중구 북성포구. 밀물을 따라 어선들이 하나둘 부두로 들어왔다. 배가 닿기 무섭게 부둣가에 있던 100여 명이 배에 뛰어올라갔다. 갑판에는 제철을 맞은 주꾸미와 꽃게, 광어·갯가재 등이 붉은 고무대야에 담겨 있었다.

 “자~ 골라보세요. 간자미도 있고요. 갯가재와 주꾸미는 알이 꽉 찼습니다.”

 ‘대부호’ 신준호(47) 선장의 말에 여기저기서 “이건 얼마냐”는 물음이 터졌다. 꽃게와 가재는 1㎏에 7000~1만원, 동네 시장에서 흔히 보는 검은색 비닐봉투에 가득 담은 잡어와 젓갈용 작은 새우는 1만원 선이었다. 도매시장에서 ㎏당 4만원인 주꾸미는 이곳에선 3만5000~3만7000원이었다. 싼 것은 여느 어시장보다 1000원, 광어·주꾸미처럼 비싼 수산물은 5000~1만원이 저렴했다. 잡어를 검은 비닐봉투에 가득 채우고 ‘덤’이라며 망둥어 한두 마리를 더 끼워주는 인심도 있다. 젓갈용 새우를 사러 서울 동작구에서 온 강영애(69·여)씨는 “한 달에 한 번 정도 이곳에서 수산물을 사간다”며 “배에서 바로 사기에 싱싱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것”이라고 말했다.

 인천 차이나타운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는 북성포구. 배 위에 어시장이 서는, 전국에 몇 안 되는 부두다. 밀물 때에 맞춰 배가 들어와 영업을 시작하고, 다 팔리면 배가 나간다. 다음엔 순서를 기다리던 또다른 고깃배가 들어와 장사를 한다. 이렇게 서너 번 고깃배가 갈리면 그날 장이 끝난다.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값이 싸고 싱싱해 인천 근처 어시장을 훤히 꿰고 있는 전문가급 소비자들이 주로 찾는다. 인천에선 “소래포구 가는 건 외지인, 북성포구 찾는 게 진짜 토박이”란 말이 있을 정도다. 평일엔 100여 명, 주말엔 500여 명이 온다. 주꾸미와 꽃게 같은 인기 해산물이 제철인 요즘이 한참 호황일 때다.

 부두 근처 30여m 길이의 작은 골목엔 횟집 10여 곳이 몰려 있다. 배에서 산 생선을 가지고 가면 상추 같은 채소를 곁들여 회 상을 차려주고 매운탕까지 끓여준다. 3인 2만원, 4인 3만원 정도를 받는다.

 북성포구에는 일제강점기에 어시장이 처음 생겼다. 그 뒤 6·25 때 북한에서 온 피란민들이 고향에서 멀지 않은 이곳에 대거 정착하며 규모가 커졌다. 1980년대 중반까지는 인천의 대표적 어시장 역할을 했다. 그러다 인천항과 연안부두에 어시장이 생기고 소래포구가 유명해지면서 쇠퇴하기 시작했다.

 그런 북성포구가 다시 알려지기 시작한 건 사진작가들 덕이다. 해 질 녘 노을과 배 위에 서는 어시장은 작가들 사이에 손꼽히는 사진거리였다. 2000년대 중반 들어 사진 동호회에서까지 단체로 찾아오면서 어시장에 한층 활기가 돌았다. 13일 동호회를 따라 이곳에 사진을 찍으러 서울에서 온 김정환(35)씨는 “사진도 사진이지만 알이 꽉 찬 갯가재를 잔뜩 사게 됐다”며 “다음엔 아이스박스를 챙겨 와야겠다”고 말했다.

 북성포구에는 밀물이 최고조에 달하는 약 2시간 사이에만 고기잡이배 어시장이 선다. 매일 달라지는 물때는 국립해양조사원 홈페이지(www.khoa.go.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글=최모란 기자
사진=김상선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