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약계의 샤넬? 치약 하나에 가격이 무려…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레몬트리]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개발된 마비스는 50년 전통을 지닌 제품. 유럽의 전통 치약 제조 방식을 고수하고 있으며, 현재 국내에서는 구매 대행으로만 구입이 가능한데 가격은 10달러 선이다. 분스는 LG생활건강에서 브랜드를 철저히 숨기고 미니멀한 디자인으로 탄생시킨 치약이다. 국내 브랜드에서는 볼 수 없었던 고상한 디자인과 170g에 2000원이라는 가격으로 눈길을 끌었다.

치약계의 샤넬 vs. 유니클로 누가 누가 멋지나?

Teo 대학 시절 밀라노 가구박람회에 갔다가 약국에서 마비스 치약을 발견했는데요. 처음에는 치약인 줄도 몰랐어요. 그런데 치약인 걸 알고는 이탈리아 사람들 진짜 미쳤어, 치약까지 이렇게 예쁜 걸 쓰다니, 하면서 부러워했어요. 그날은 미니 사이즈 하나만 샀는데, 호텔에서 써봤더니 사용감까지 정말 좋더라고요. 다음 날 당장 달려가서 더 구매했죠.
H 저는 소문으로만 듣다가 재작년인가 면세점에서 구입했거든요. 그런데 치약 하나가 10달러에 육박하는 거예요. 망설일 수밖에 없었는데, 한편으론 또 무척 예쁜 거죠. 손님 올 때면 당당히 꺼내서 장식하고 싶은 치약이랄까요? 나의 취향이 얼마나 감각적인지 은연중에 드러낼 수 있을 것 같았고요.

미국에서 만든 데오던트.

Teo 저는 디자인도 디자인이지만 맛 때문에도 마비스 치약 마니아가 됐어요. 그린, 블루, 바이올렛 등 컬러 별로 각기 맛이 다른데 진짜 향기 좋은 티처럼 매력적이어서, 어떤 때는 막 삼켜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껴요. ㅎㅎ 이를 닦을 때 질감은 굉장히 부드러우면서 혀를 아프게 하지도 않고, 그러면서도 입 안의 음식 냄새는 싹 소독이 되고요. 그러니까 정말 좋아서 일부러 이를 많이 닦게 된다는 단점이 있죠.
H 마비스 치약은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전통 방식을 고수하며 만들고 있대요. 클래식한 패키지 디자인을 선택한 것도 50년이 넘는 역사를 보여주기 위한 거라네요. 워낙 럭셔리한 디자인인지라 치약계의 샤넬로 불리면서 트렌드세터들의 사랑을 받고 있기도 하고요. 그런데 샤넬 치약보다 한 술 더 떠서 에르메스 치약이 있더라고요. 미국에서 만든 데오던트라는 제품인데요, 이 치약은 제일 저렴하다 싶은 게 10달러로 시작하고 심지어 300 달러가 넘는 제품들까지 인기리에 팔린대요.

Teo 직접 써본 적은 없지만 굉장히 럭셔리한 디자인으로 기억하고 있어요. 이런 치약이라면 정말 감각적인 선물 리스트가 될 것 같고요. 그런데 제가 만난 트렌드세터들은 거의 모두가 치약 하나도 이렇게 신경 써서 골라요. 그것만 봐도 일상의 작은 부분에서조차 멋진 디자인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결국 자신의 삶 또한 스타일리시하게 가꿔나갈 수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H 저는 최근 LG생활건강에서 뷰티 편집숍 분스와 협업해서 내놓은 ‘분스’라는 이름의 치약도 눈에 띄더라고요. 처음에는 미니멀한 디자인에 ‘Refresh’라는 문구만 적혀 있어서 이게 뭐지? 했다니까요. 나중에 보니 미국의 유명 라이프스타일 칼럼니스트가 자신의 블로그에 이 제품을 보고 ‘유니클로’ 같은 치약을 발견했다고 올리기도 했더라고요.

Teo 개인적으로 분스는 마비스처럼 눈길을 확 끄는 고급스러움은 없었어요. 하지만 약초 사진이나 호랑이 이빨 사진 일색인 국내 브랜드 제품들을 떠올려보면 진일보한 디자인이죠. 무엇보다 브랜드 이름을 크게 안 적고 제품명을 전면에 내세운 게 마음에 들어요. 촌스럽지 않고요.
H 일단 가격이 2000원인 게 의미가 있죠. 럭셔리 브랜드 옷도 좋지만, 분명 유니클로 가격대에서 좋은 디자인을 만나고 싶어 하는 층도 존재하니까요. 그런데 패키지 상자 옆면에 치아 일러스트는 좀 빼줘야 될 것 같아요. 더할 나위 없이 시크하다가 갑자기 치아 그림과 효과 설명 문구가 크게 땅! 나오니까 ‘어, 내가 사람 잘못 봤나?’ 했다니까요.

Teo 그런 거 보면 국내 브랜드에서 조금 더 과감하게 멋진 디자인을 시도해볼 필요가 있는 것 같아요. 얼마 전 메종앤오브제 아시아 전시에서 세계적인 디자이너 톰 딕슨의 강의를 들었는데요, 그가 “자신은 엄청난 행운아다, 전 세계인들이 사랑하는 런던이라는 도시에서 태어났고 그 문화유산을 받았기에 과거 선조들이 만들어놓은 것에서 재료 혹은 용도만 바꾸는 작업을 하면 된다”고 이야기하더라고요. 마비스 치약 또한 유럽적인 헤리티지를 디자인으로 풀어낸 거라고 볼 수 있어요. 우리도 언젠가 선비 얼굴이 들어간 치약을 하나 만들어도 재미있을 것 같네요. 한국적 디자인을 세련되게 풀어내면 한류 바람이 부는 나라에서는 경쟁력 있는 제품이 될 것 같거든요.
H 외국에서는 럭셔리 치약들이 모두 유명 패션 쇼핑몰에서 판매되고 편집숍에서도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잖아요? 실장님이 선비 치약을 잘 만들고 히트를 쳐서 우리 치약들도 전 세계 디자인 피플에게 사랑받는 날이 오기를 바랍니다. ㅎㅎ

토크녀 H 레몬트리 인테리어&리빙 에디터 홍주희.
살림 안 하면서 생활용품 쇼핑에는 매진하는 살림 집착녀.

토크남 Teo 요즘 인테리어 디자인계의 대세남 양태오.
세계적 디자이너 마르셀 반더스의 회사에서 일한 경력의 소유자이자 아름다운 일상용품 마니아.

글=레몬트리 홍주희 기자
사진=전택수(JEON Studio)

ADVERTISEMENT
ADVERTISEMENT